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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신라의삼 국통일에 대한 해석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7.03.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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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통일에대한 의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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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신라의 삼국 통일은 세계 역사상 특이한 유형의 하나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신라의 삼국 통일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반까지 약 300여년 간을 ‘통일신라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남북국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통일의 기준을 국가의 이름으로 잡을 때 신라는 분명히 삼국을 통일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전체 주민이나 영토로 잡을 때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문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러면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일컬어지는 김춘추와 김유신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 보기로 하자.
김춘추는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는 구실로 귀족들에 의해 쫓겨난 제 29대 진지왕의 손자이다. 진지왕의 폐위 이면에 가로 놓인 정치적 갈등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김춘추의 집안이 성골의 계보에서 제외되어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진지왕이 폐위된 뒤 진평왕이 등극했다. 귀족들을 견제하여 왕권강화정책을 펼치던 진평왕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진지왕의 아들 용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둘째 딸과 결혼시키고 국왕의 측근 관직인 내성사신(內省私臣)을 맡겨 자신을 보위토록 했다.
용춘은 역시 왕권과 긴밀하게 결탁함으로써 정치적 지위를 강화시켜 갔다. 이러한 가운데 김춘추도 김춘추도 정치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김춘추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폐위된 왕손이 그 야망을 실현시키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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