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선종의 성립 배경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7.03.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600원

* 본 문서는 한글 2005 이상 버전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 한글 2002 이하 프로그램에서는 열어볼 수 없으니, 한글 뷰어프로그램(한글 2005 이상)을 설치하신 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선종의 성립 배경에 대한 것.

목차

1.선종성립의 배경
(1) 선종의 수용
(2) 선종의 성립
2. 9산선문의 성립
3. 선종의 사회적 기반과 성격

본문내용

(1) 선종의 수용
선종의 전래자인 법랑은 선덕왕과 진덕왕대(632∼47년)에 당에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자인 신행(704∼79년)의 비문에서 활동의 편린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중국 선종의 4조 쌍봉도신을 이은 법랑의 선맥 이외에 신수의 북종선을 계승한 신행은 60세 이후에는 단속사에서 선법을 폈던 것 같다. 신행의 제자 삼륜이 왕실과도 관련을 맺어 813년 무렵에는 단속사를 확장하기도 했으나, 김헌창의 난(822년)의 여파로 선법의 확대전파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선맥의 계보를 전혀 알 수 없는 9세기 초의 선종에 관한 산발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804년(애장왕 5)에 선림원의 종이 이루어졌고, 817년(헌덕왕 9)에 경주 흥륜사에서 영수선사가 이차돈의 무덤에 예불할 향도를 결성했다고 한다. 이상의 자료와 함께 앞에서 언급한 화엄종이 선종과 융합된 일면을 고려하면서, 초기 선종의 수용에 대한 선교 양쪽의 인식이 어떠했던가를 짚어나가기로 하겠다.
단속사는 신행이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곳이다. 그가 이 절을 창건한 것은 아니며,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선림원 종(鐘)의 조성기록에는 선사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으나, 우두선을 익힌 해인사 창건주 순응화상이 수석화상으로서 관여했다고 되어 있다. 영수선사가 예불향도를 결성한 흥륜사는 527년(법흥왕 14)에 창건한 왕실의 원찰이었다. 어느 하나 선종 독자의 사원은 찾아볼 수 없다. 단속사와 화엄종 사찰을 단순하게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해인사와 부석사 역시 화엄사찰이다. 그렇다면 초기의 선사들은 교종계 사원에 의탁하여 선법을 전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추측컨대, 교종승들이 불교의 새로운 조류인 선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선사들을 받아들였거나, 아니면 스스로 익히기 위해 수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쨌든 이때의 선종을 고려시대나 오늘날 인식되는 선종의 개념으로써 규정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이러한 인식으로 볼 때 주목되는 것이 「단속사 신행선사비」 이다. 비의 지은이 김헌정은 신행의 행적을 기술하면서 겸손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대목도 집어넣었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