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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 전기의 문화적 특성에 관한 고찰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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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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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조선 초기의 성리학적 흐름
(1) 성리학의 융성
(2) 타종교에 대한 정책
3. 조선초기의 문화적 양상
⑴ 훈민정음의 창제
⑵ 문학
⑶ 출판과 인쇄술
⑷ 사서의 편찬
⑸ 음악
⑹ 그림
⑺ 공예와 건축
4.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대체로 하나의 왕조가 시작됨에 따라, 그 왕조의 정치 혹은 지배층의 사상에 맞는 문화가 발달되기 마련이다. 조선왕조 초기의 문화적 흐름은 이러한 측면에서, 지배층이 지향하고 있었던 학문과 사상에 따라 파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진다. 조선 전기의 문화적 뼈대를 이루고 있는 세종, 성종 대의 문화적 융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라 보여진다. 따라서, 조선 전기의 문화적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선 초기 지배층들이 향유하고 있었던 사상적 성향을 개괄적으로 살펴본 후에, 이를 바탕으로 조선 전기에 발달했던 여러 문화 현상에 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조선 초기의 성리학적 흐름

(1) 성리학의 융성
조선 초기 지배층인 신진사대부층은 고려말기에 등장한 조선건국의 주체세력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수용하였고, 불교를 배척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불교에 대한 투쟁은, 불교와 일체화된 고려 중앙권력층에 대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불교에 대한 승리는 사상적 승리인 동시에 정치사회적인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진세력들은 조선왕조를 창건한 이 후, 그들의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문화를 지배하려는 현상을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초기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사장을 중시한 정도전 계통의 유학자 관료들과 경학을 중시한 정몽주 계통의 유학자들로 유교적 지배층이 양분되어 있었다. 조선 초기세력을 이끌어간 정도전 등은 성리학을 정치 지도 이념으로 정착시키고 왕권 강화와 중앙 집권 체제의 정비를 위해 노력하였다. 여기에 태종대에서 세종대, 성종대로 이어지는 유교이념 정책은 성균관과 집현전 등을 통해서 수준 높은 중세문화를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에 왕실 위주의 국가 질서론과 주자가례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 인하여 예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예학의 발달은 도덕 윤리를 기준으로 하는 형식 논리를 중시하고, 명분 중심의 가치를 강조하는 문화적 흐름을 주도하였다.

(2) 타종교에 대한 정책
조선 창건 당시 표방한 3대국시에 따라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이 강하게 시행되었다. 세종 대에 도첩제가 실시되고, 여러 불교 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양대 종파로 통합하여 정리하였다. 하지만 민간의 불교까지 억압하지는 않았다. 조선시대 불교는 정치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 초기만 해도 불교와 무속의 세력이 비교적 컸기 때문에 주자학이 독선적인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유학에 기초한 문치주의를 표방했던 세종도 말년에 불교에 심취하게 되어, 내불당을 궐 안에 짓고 부처를 모시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① 이성무,『조선왕조사』, 동방미디어, 1998
② 이성무,「조선시대사 서설」,『역사학보』, 2001
③ 신병주 外,『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권, 청년사, 2003
④ 지두환,『조선시대 사상과 문화』, 역사문화, 2000,
⑤ 고혜령 外,『조선시대의 사상과 문화』, 집문당, 2003
⑥ 최완기,『조선의 역사』, 느티나무, 1997
⑦ 이우성,「조선시대 사회사상사」,『한국문화사신론』,중앙대, 1975
⑧ 강만길,「한글창제의 역사적 의미」,『창작과 비평』,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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