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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촌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 및 대안 찾기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3.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불량촌에 대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많은 참조부탁드리겠습니다.

목차

1. 불량촌의 개념이해하기
2. 불량촌의 형성과 한국의 특수 사정
3. 불량촌 재개발의 배경과 쟁점
4. 불량촌의 실태와 주거빈곤
5. 서울시의 불량촌 재개발 정책
6. 불량촌의 관련 뉴스 보도
7. 불량촌 재개발을 위한 대안

본문내용

2. 불량촌의 형성과 한국의 특수 사정
나라마다의 특수한 사정이 담겨 있는 불량촌이 게토나 할렘 같은 것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도 수준이하의 주택들이 집단화, 노후화, 격리화, 차별화된 집단촌을 찾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때 서울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가가’, 남도 지방에서 많이 분포했던 ‘나환자촌’, 전국에 산재해 있던 천민들의 집단촌, 이를테면 ‘백정골’ 같은 곳을 손꼽을 수 있다.
`가가는 한양의 육의전 같은 데서 가게를 가진 사람들이 상점면적을 늘리고자 단속 없는 틈을 타서 가게 앞에 임시로 늘린 가건물이다. 불법적인 건축인 점에서 무허가 건물인 셈이다.전염병과 화마의 온상이라고 지탄받았다. 나환자촌은 천형이라 손가락질 받던 나환자들이 사회적 냉대를 받아 집단화했던 곳이다. 자연발생적인 것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시대 세종 때처럼 나라에서 정책적으로 나환자를 수용하면서 생겨나기도 했다.
백정골은 신체적 결함이 아닌 신분적 결함 때문에 생겨난 집단촌이었다. 백정들은 다른 계급 사람들과는 혼인하지 못한 정도로 엄청난 차별을 받았다. 그들은 변두리에 따로 모여 살거나 어느마을에서 살더라도 변두리에 떨어져 살았다. 나환자촌과 백정골은 둘다 사회적 차별이 만든 집단촌이다.하나는 신체적 결함에 대한 차별이고, 다른 하나는 신분에 대한 차별이다. 이 모든 불량촌은 도시 바깥의 생겨난 집단촌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불량촌과 거리가 멀다.

한국불량촌의 원형-토막민촌
위의 사례들은 도시화의 발생이전의 농촌에서 볼수 있었던 집단촌이다.
그런 점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일제 때 나타난 ‘토막’, ‘토막민촌‘이 오늘날의 보편적 도시정경인 불량촌의 원형이다. 토막이란 국유지 또는 민유지인 산비탕 또는 개천가를 무단 점거하고 지면을 파서 그 단면을 벽으로 삼거나 혹은 땅위에 기둥을 세우고 거적등을 다루어서 벽으로 삼고 헌 양철이나 판자로 간단한 지붕을 만든 원시적 주택이다. 이런 토막을 짓고 사는 사람이 토막민 이며, 이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이 토막민촌이다. 토막민들은 식민지 조선의 도시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민의 한형태.즉 그들이 식민지시기에 와서 비로서 생겨난 빈민들 이라는 것이다. 토막민이 생겨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수탈적인 식민지 농업정책 때문이었다. 토막민의 상당수는 농촌에서 쫓겨난 농민이었다. 농촌의 살자리를 잃은 농민등이 갈수 있는 중요행선지는 서울 같은 대도시거나,취업이 기대되는 신흥도시 였다. 또한 사회적 재난도 토막민촌 형성의 이유였다.지금의 서울시 신당동에 토막민촌이 형성된것운 1918년경 전염병 등에 걸린 사람들이 가주 또는 고용주로부터 추방되어서였다. 또한 부산의 범일동 조선방직 공장 뒤편에 토막촌도 나환자가 치료를 위해 왔다가 입원이 거부되자 귀향비가 궁하여 토막을 만들어 살기 시작한 경우였다.

사회재변에 따른 불령촌의 확산 -판자촌
판자촌은 국토분단과 전쟁으로 급속하게 늘어난 제2세대 불량촌이다. 판자촌의 확산은 재변을 피해 도시로 유입된 급격한 인구증가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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