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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김제시(金堤市)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3.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벽골제 쌍룡놀이
2.쌍룡추와 벽골룡전설

본문내용

김제시(金堤市)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하였으며,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과, 남쪽은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군․부안군과, 북쪽은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군․이리시․옥구군과 인접하고, 서쪽은 서해에 접하고 있다.
신석기 말기에서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삼한시대 마한의 영토로서 50여 개의 부족국가 중 가장 방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벽비리국(辟卑離國)이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백제의 마한 병합 뒤 이곳은 벽골군(碧骨郡)으로 바뀌었고, 이 때를 전후하여 벽골제가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40년(태조 23) 왕건이 중앙집권제의 일환으로 전국 행정구역을 재정비하였는데, 이때 김제지역은 윤주(閏州)에 속하였다가, 그 뒤 몇 차례 개편을 거쳐 1143년(인종 21)에는 김제현과 금구현으로 나뉘었고, 예종 때에 와서는 다시 김제․금구․만경현으로 나누고, 전주목의 관할하에 속하였다. 조선 건국 후 1403년에 김제군 또는 벽성군으로 복칭된다.

1.벽골제 쌍룡놀이
김제군 부량면에는 옛날 백제 때에 농경지의 수리시설로 쌓은 벽골제가 있었는데, 그 아래 두개의 용추(龍湫)에는 백룡과 청룡이 살고 있었다. 백룡은 성질이 양순하여 수리시설의 제방을 보호하였는데, 청룡은 심술궂어서 때로 성을 내어 노도(怒濤)를 일으키면 제방이 무너지곤 하였다. 신라 원성왕 때에 무너지기 직전에 있는 제방을 수축하기 위하여 조정에서 기술감독으로 원덕랑(元德郞)을 보냈다. 벽골태수 유품(由品)의 딸 단야(丹若)가 원덕랑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원덕랑의 약혼자 월내(月乃)가 멀리 경주에서 찾아왔다. 이때에 청룡이 성을 내어 백룡과 싸움이 벌어져 제방이 무너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이렇게 되면 처녀 하나를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무사하게 된다는 풍습이 있었는데, 태수가 낭자 월내를 밤중에 보쌈하여 용추에 넣고자 하였다. 이를 미리 알게 된 단야가 이에 대신하여 제물로서 희생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이곳 주민들은 단야의 거룩한 연정을 기념하는 뜻에서 해마다 이 축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쌍룡놀이의 내용은 벽골제 밑에서 백룡과 청룡이 싸우다가 백룡이 패하는 광경과 단야가 청룡 앞에서 제방의 영원한 보호와 원덕랑의 성공을 빌면서 희생되는 광경을 놀이로서 연출하는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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