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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역사]위화도 회군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3.2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통해서 역사적 배경과 역사의 동인과 사회 조직 및 제도의 발전과 인과관계를 보다 명확히 파악하고, 역사는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역사 속의 한 인간으로서 사회와 역사의 문제를 자기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특정 시대의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 인간과 역사발전 상호간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으며, 박제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와의 교감 속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역사라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가 느끼고 체험하는 학습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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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목차

목 차

서론

본론   1.고려 말의 정세
    1) 나라 안의 정세
2) 나라 밖의 정세
       2. 최영과 이성계의 성장과정과 정치적 세력
         1) 최영
         2) 이성계
     3. 조선의 건국과정
         1) 위화도 회군
          2) 위화도 회군으로 인한 정권교체시기
    4.조선의 건국
         1) 국호와 국도
          2) 건국이념

결론   1.생각할거리               2.맺음말

본문내용

3.조선의 건국과정.
1) 위화도 회군
1388년 이월, 고려가 요동을 공격하기로 한 것은 명이 무리한 공물을 요구하는데다 철령 이북땅을 차지하겠다고 고려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명은 철령 이북 땅이 원의 쌍성총관부와 동녕부에 속해 있으므로 당연히 원을 몰아낸 명의 소유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명나라 역시 원과 마찬가지로 고려를 속국으로 삼겠다는 말이었다. 때문에 고려 정부는 크게 반발하였고, 급기야 최영을 중심으로 명의 전초 기지인 요동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우왕은 최영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우왕은 8도에서 군사를 징집하는 한편 세자와 왕족들을 한양산성으로 보내고 우현보로 하여금 개경을 지키게 한 뒤, 최영과 함께 서해도로 가 요동 정벌을 준비했다.
이성계는 다음 네가지 이유 (4불가론)를 들어 요동정벌 계획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1.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역함은 옳지 않다.
2. 여름에 군사를 일으킴은 옳지 않다.
3. 거국적으로 원정군을 일으킬 경우 왜구가 침입 할 우려가 있다.
4. 장마철이라 활의 아교가 녹아 풀어지고 대군이 병에 걸릴 염려가 있다.

이런 네가지 이유를 들어 여러 차례 출정을 반대하였으나, 결국 그의 주장은 묵살되고 말았다. 왕은 계획대로 각 도에서 6만여 명의 징집한 다음 1388년 3월에 최영을 팔도도통사로, 조민수를 좌군도통사로, 그리고 이성계는 우군도통사로 임명한 후 정벌군을 출정 시켰다.
이에 이성계는 할 수 없이 조민수와 함께 정벌군을 이끌고 요동을 향해 그해 5월에 출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의주의 압록강 하류에 있는 섬인 위화도에 이르렀을 때, 장마로 인하여 압록강이 엄청나게 불어나자 정벌군은 거기서 일단 휴식을 취하며 주둔하고 있었다. 이때..........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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