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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조선공산당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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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사회주의와 조선공산당
1) 사회주의의 본격적 수용과 일제하에서 의 사회주의의 의미
2) 조선공산당의 창립과 국내외 활동
3) 민족해방운동 속의 그들
3. 조선공산당의 재건과 전개
1) 8월테제
2) 좌우합작모색-이승만, 김구와의 관계
3)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결성
4) 조선공산당의 사회조직과 활동
5) 조선공산당과 신탁통치 문제
4. 나가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우리는 흔히 자신이 옳다고 하나를 맹신함으로써 눈의 초점을 흐리곤 한다. 이렇게 바라보는 것들이 왜곡되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반공의 바람이 불던 1980년대 이전까지 이러한 현상은 더욱 강하였다. 민족의 해방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가지고 이를 위해 투쟁했던 많은 사람 모두 그들의 생존까지 위협받으며 뛰어들었음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모두 달랐던 것이다. “공산”이라는 단어는 금기시해야 할 단어였고, 사회주의에 대한 출판물, 연구도 이루어지지 못할 정도로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평가절하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어느 정도 해소되었으나 아직도 사람들의 인식은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근원적으로 우리의 해방을 들여다보면 그 이면은 사회주의와 깊이 연관되어 전개되었다. 또한 그들의 폭력에 대해 성급하고 과격했다고 하기 전에 그 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일제의 지배하에 모든 생활을 철저한 감시 속에 살아갔다. 합법적인 투쟁으로만 독립을 찾기는 힘들었다.

3. 조건공산당의 재건과 전개

일제말기, 비합법적으로 활동하던 공산주의자들은 1945년 8월 해방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해방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재건운동을 시작한 쪽은 과거 서울파 공산주의자인 이영․정백, 경성제대 그룹의 최용달, 화요파의 이승엽․조동우, 상해파의 서중석 등이었다. 이들은 8월 16일 서울 종로 장안빌딩에 모여 보통 장안파 공산당이라 불리는 조선공산당을 결성하고, 8월 17일부터 지방당 조직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주에서 은거하고 있던 박헌영은 서울로 올라와 당의 재건작업에 나섰다. 박헌영은 8월 20일 과거 경성콤그룹과 화요파 중심인물들을 모아 조선공산당 재건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8월테제’라 불리는 당의 테제를 잠정적인 정치노선으로 제시하였다. 박헌영이 창당이 아닌 당 재건준비위원회라는 이름을 쓴 것은 1925년에 결성된 조선공산당의 전통과 연결시켜 당 운동의 정통성을 계승하겠다는 의도였다. 박헌영 중심의 당 재건준비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자, 장안파 공산당은 동요했으며, 내부에서 당을 해체하고 재건준비위원회에 합류하자는 의견이 일어났다. 결국 장안파 공산당은 8월 24일, 분위기에 눌려 당의 해체를 결정하고, 재건준비위원회와 당의 통일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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