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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임술민란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5 | 최종수정일 2016.01.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조선후기에 들어와 경제생활의 급격한 변화로 농민의 계층이 분화하고, 양반의 몰락으로 신분체제가 붕괴됨으로써 전통사회의 기본질서가 무너져 민심은 정부로부터 멀어져 갔다. 더욱이 19세기 이후 계속된 외척의 세도정치로, 관리들이 부패하여 삼정(三政)이 문란해짐에 따라 농촌과 국가재정은 극도로 피폐하여 더 이상 지탱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862년 철종 13년 새로 부임한 진주 병사(兵使) 백낙신이 백성들에게 가혹한 탄압과 착취를 일삼자, 양반 출신의 농민인 유계춘 등이 난을 일으켜 관아를 습격하고 환곡을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를 시작으로 농민들의 불만은 전국적으로 폭발하게 되는데, 임술년(壬戌年)에 일어났다고 하여 ‘임술농민항쟁’ 이라고 한다.

목차

1. 머리말
2. 임술농민항쟁의 발생원인
3. 임술농민항쟁의 전개과정
4. 항쟁집단의 조직
5. 봉건정부의 대책
6. 맺음말

본문내용

임술농민항쟁은 계급적 이해대립과 국가의 착취의 극명한 표현이었으며 해체봉건기의 제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선 임술농민항쟁은 봉건적 생산관계하의 기본모순인 지주 대 작인 간의 소유권 투쟁을 기저에 두면서 농민층 내부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화를 반영한 부농과 빈농의 대립이 상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농민항쟁을 야기시킨 원인으로서, 국가에 의한 조세수탈이 격증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조세량 자체의 증가현상과 함께 화폐를 매개로 하여 조세제도의 운영과 수탈방식이 질적으로 변화하였다는 사실이고, 이는 농민에 대한 조세중과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사대부 ․ 토호들의 불법적인 향촌지배의 문제가 있었었다. 조선 봉건사회의 구조 속에서 계급으로서의 지주는 계급이익을 실현하는 기구로서의 봉건국가와 지주의 계급지배를 정당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유교사상의 뒤에 은폐되고 있었다. 따라서 지주계급의 이익은 항상 국가권력의 조정에 통제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1. 오영교, 「1862년 전국농민항쟁」, 『한국사』10, 한길사, 1994
2. 강만길, 『고쳐쓴 한국 근대사』, 창착과 비평사, 1994
3. 한국근대민중운동사서술분과, 『한국근대민중운동사』, 돌베게, 1989
4. 망원한국사연구실,『1862년 농민항쟁-중세말기 전국농민들의 반봉건투쟁』, 동녘, 1988
5. 박찬승,「조선후기 농민항쟁사 연구현황」,『한국중세사 해체기의 제문제』하, 한울,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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