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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청조 정권의 성립과 발전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중국 청나라의 성립과 발전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만주족(滿洲族)의 흥기(興起)와 청조(淸朝)의 성립(成立)
1. 명대(明代)의 동북지방(東北地方)
2. 후금(後金)의 건국(建國)
3. 대청(大淸)으로의 발전(發展)

Ⅲ. 청조통치권(淸朝統治權)의 확립(確立)
1. 중국내지(中國內地의 정복(征服)
2. 삼번(三藩)의 난(亂)의 평정(平定)과 대만(臺灣)정벌
3. 지배체제(支配體制)의 완비(完備)

Ⅳ. 맺음말

본문내용

명나라 만력 20년(1592)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에서는 구원병을 파견하고 이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와 군량의 지출 등에 국력을 기울이다 보니 여진족에 대해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이 틈을 노려 건주위에 소속되었던 여진족의 영걸 누루하치가 점차 세력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누르하치는 건주위에 속하는 수장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건주좌위의 도독(都督) 맹가첩목아의 6대손으로 선조는 건주좌위의 지휘사, 도독 등의 관직을 맡았던 여진족의 지배층 출신이다. 누르하치는 19세에 분가하여 자립한 이후 명의 요동대장 이성량의 휘하에 활약하여 명조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하였지만 건주여진의 수장 왕고가 무순을 침범하여 명나라의 군관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성량은 토벌사령관으로서 6만의 명군을 거느리고 왕고의 반란군을 대하였다. 왕고는 해서여진의 하다부로 도망을 쳤는데 하다부의 수장이 왕고를 명나라고 인도하고 말았다. 왕고는 참형을 당하고 그 아들이 아타이가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아버지를 적에게 판 하다부에 복수하기 위해 예허부와 연합하여 전투를 일으켰다. 이 싸움으로 누르하치의 조부인 기오창가와 부 탁시는 명군이 아타이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명군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누르하치는 명군을 끌어들인 니칸 와일란의 계략으로 판단하여 1583년 니칸 와일란의 숙수후부를 공략함으로써 누르하치의 기병(起兵)이 시작되었으며 건주여진에 속해 있는 5부(部)를 토벌하여 1589년에는 이 5부를 모두 항복시켜 건주여진의 세력을 통일하는데 성공하였다.

참고 자료

[강좌 중국사 4권] 지식산업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연구집 편
[중국역사 하권] 서원 신 1997년
[이야기 중국사 3권] 청아출판사 개정신판 1998년
[역사군상 그래픽 전사 시리즈 전략·전술·병기 사전 7권 : 중국 중세·근대편] 동경: 학습연구사, 1999
[만주의 역사]도서출판 삶과 꿈 2003년
[중국의 역사 10권]도서출판 한길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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