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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알렌][네비우스][남장로교 선교][북한 선교]최초 선교사 알렌과 네비우스, 남장로교 선교 및 북한 선교 분석(선교사 알렌, 네비우스 선교, 초기선교사 지방전도, 남장로교 선교, 북한선교, 알렌, 네비우스)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3.2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최초의 선교사 알렌과 네비우스, 남장로교 선교 및 북한 선교 분석

목차

Ⅰ. 서론

Ⅱ. 최초의 선교사 알렌

Ⅲ. 네비우스 선교
1. 순회전도
2. 선교지 분담 정책
3. 성경공부와 신학교육 정책
4. 사회 계층에 차별적으로 대응한 선교 정책

Ⅳ. 초기 선교사의 지방 전도

Ⅴ. 남장로교 선교

Ⅵ. 북한 선교
1. 접촉을 통하여
2. 교단을 통하여
3. 방송을 통하여
4. 북한 선교를 위한 기독교적 자세

Ⅶ. 결론

본문내용

처음부터 한국 교회는 재정 자립을 이룩한 교회로 시작했다. 조직적인 성경공부가 이루어졌으며 선교사와 사역자 뿐 아니라 초신자들도 열심히 전도했다. 1904˜7년에 일어난 대부흥은 성경공부와 기도 생활에서 얻게 된 선물이다. 선교가 시작된 지 불과 10년 만에 신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해 1900년부터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장로교는 선교사들로부터 교회의 치리권을 넘겨받았다. 감리교는 남북 선교부 아래 있던 교회들이 1930년 하나의 감리교회로 출발하면서 한국인 감독이 치리하는 교회로 출발하게 되었다. 1915년부터 감리교는 신학교육에 한국인 교수가 참여했고, 장로교는 30년대 초부터 참여했다. 초대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은 다양했는데, 한국 교회는 주로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을 넘겨받아 전도하는 교회로 발전했다.
선교사들의 관심과 기여는 다양했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기여한 것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해 유감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일제 식민지로 말미암아 참여할 사회를 상실했고 늘 생존을 염려하는 처지였다. 선교사들은 복음 전파와 교회의 설립을 위해 본국 선교부가 우려할 정도로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식민지 시대를 지나 1950년 대 이후 교회는 분열되었고 보수적 교회는 전도와 선교에만 치중하게 되었다. 1950˜60년까지 구제봉사활동은 계속 선교사들이 맡아 했으며, 신자들은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외국 교회의 선교부나 봉사기관의 원조를 받아 했다.
한국 교회의 부정적 현상들을 선교사들의 선교정책 때문이라고 전가시키는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 교육과 사상이 그렇듯이 신앙은 짜여진 틀에 똑같이 찍혀 나오는 공산품이 아니다. 백 년이면 몇 세대가 살고 가는 긴 세월이다. 그 세월에서 얼마든지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들포도를 맺었다는 이사야의 탄식이나 가라지 비유가 그것을 말해준다. 한국 교회가 보여주는 부정적 모습의 원인은 선교사들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 민족이 경험한 역사적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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