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8월종파사건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8월종파사건 관련된 짧은글입니다...
하지만 제대로된 써머리 입니다...
많이들 참고하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56년 8월, 김일성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북한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조직적인 반김일성 운동’이 시도되었다. ‘8월 종파 사건’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반김일성 세력이 모든 것을 내걸고 김일성에 도전한 북한 역사에서 가장 심각했던 권력투쟁 사건이었다.
8월 종파 사건은 전후 북한의 권력 재편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전쟁이 끝나갈 즈음, 남로당이 숙청됨으로써 권력 재편의 1라운드는 끝났다. 그리고 다시 전쟁이 끝난 뒤 전후 복구 건설과 개인숭배 문제, 농업집단화 등을 둘러싸고 심각한 노선 갈등과 본격적인 권력투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때 북한의 권력투쟁은 한국전쟁 후 북한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영향력을 높이고 있던 중국과 가까웠던 연안파와 전통적인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 줄을 대고 있던 소련파가 합작해 김일성에 대항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결과는 김일성의 승리, 연안파와 소련파의 몰락이었다. 이제 그 과정을 간단히 추적해 보자.

전후 복구를 둘러싼 갈등과 권력투쟁

전쟁의 피해는 남한보다 북한이 훨씬 더 심했다. 미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의 결과였다. 그 때문에 북한에서 “미제는 철천지 원쑤”가 되었다.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북한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후 복구 사업은 적개심과 증오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에 상응하는 물자가 필요했고, 그걸 제대로 배분할 바른 정책이 필요했다.
전쟁이 끝난 후 북한에 시급한 과제는 빠른 시일 내에 생산능력을 전쟁 이전의 1949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그를 위해 북한은 인민경제 복구 3개년 계획(1954~56)을 세우고 추진하였다. 1956년경 북한은 이미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