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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복식사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고려시대 복식사에 대해 조사

목차

1.고려시대복식의 변천과정
1).고려초기~중기(오대, 송 복식 영향기)
2).고려후기(몽고 복식의 영향기)
3).고려말기(명복시의 영향기)
2.고려시대 복식의 특징

본문내용

1.고려시대복식의 변천과정

1).고려초기~중기(오대, 송 복식 영향기)
통일신라시대 이후 복식이 이중구조를 형성하면서 고려도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후주와 송과의 친선책을 취하면서 제4대 광종은 대외적으로 후주와 송과 친선책을 취해왔다. 이때 후주 쌍기의 진언으로 백관의 의관을 중국제도에 쫓도록 하였다. 광종은 백관의 공복을 4색으로(자, 단, 비, 녹) 구분하는 사색공복제도를 취하였다. 백과이 4색 공복을 착용하고 왕은 조정에 나가 정사를 볼 때 입는 옷으로 국초부터 황색포를 착용하여 자주성을 띠었음을 알 수 있다.

2).고려후기(몽고 복식의 영향기)
고려 제23대 고종때 몽고의 침입으로 고려는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이후 고려는 몽고에게 항복하게 된다. 몽고의 영향아래에 있었던 고려는 몽고풍의 문화를 따르게 된다. 이러한 몽고풍의 영향을 받은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머리 변두리를 깍고 정수리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개체변발, 충렬왕이 공주를 위해 원에서 가져왔다는 진주의 그리고 원에서 황제와 관원이 입는 질손, 또 족두리, 도투락 댕기, 은장도등 많은 몽고풍의 예들이 있다. 하지만 원에 복속 되어있던 시대에도 우리 국속과 원제와의 이중적인 구조를 지니면서 왕의 면복, 백관의 공복계통은 그대로 송제와 별 차이가 없는 것을 사용하였다.


3).고려말기(명복시의 영향기)

ㄱ.고려왕조의 자주성 모색
원이 쇠퇴하면서 공민왕대에는 원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정책을 폈다. 복식에 있어서도 왕 자신은 제복인 면복에 있어 구류면 구장복대신에 중국황제와 동격의 십이류면 십이장복을 착용하기도 하였다. 문무백관은 흑의 청립으로 하고 패복은 흑건대관으로 하며 여복은 흑라로 고치기도 하였는데 이는 배원향명의 새로운 움직임 속에서 자주성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었다.

ㄴ.명복식의 영향
31대 공민왕 때에 증여받은 왕의 면복, 원유관포 및 군신의 배제관복은 중국에 비하여 2등체강 원칙을 적용하여 왕복은 중국의 친왕례에 따른 것이었다. 32대 우왕때에도 명으로부터 국왕의 조복 및 제복과 신하의 제복의 증여가 있었고 명의 제도에 따라 관복을 착용하였다. 다만 편복은 과거의 제도를 고치지 못하고 관원은 입자를 쓰고 백성들은 원나라 때와 같은 끈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명의 복식영향은 조선왕조에 들어가서 국가정책에 의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2.고려시대 복식의 특징

1).남자복식
남자복식은 그 제도나 착용법이 조선시대와 거의 같은 구조였음을 문헌을 통해 알 수 있다.
ㄱ.왕복
고려의 왕이 착용한 왕복은 용도에 따라 제복, 조복, 공복, 상복, 연복의 구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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