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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주의’는 진정 ‘인간’중심주의 인가 ?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중국 역사상 최고의 토목건축물이라는 ‘三峽댐’이 완공됐다. 그러나 중국 관영언론 등을 통해 ‘싼샤댐 건설은 중국의 자긍심’이며 이는 범국가적인 차원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해온 胡錦濤 국가주석은 물론 싼샤공정건설위원회 주임을 겸하고 있는 溫家寶 총리나 당 정치국 상무위원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았다.
싼샤댐은 長江의 수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국 3,000년 역사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댐과 관련하여 책임 있는 당사자들은 참석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 이는 환경 문제와 생태계 파괴 및 문화재 수몰 등의 피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년과 비교해서 北京의 이상기후와 싼샤댐 건설에 따른 수질오염으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싼샤댐의 완공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싼샤댐은 환경과 관련하여 많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이는 대략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 첫째 자연 재해에 대한 인간 극복의 노력이라는 점이다. 중국 사서에는 “6년에 한 번은 흉년이 들고 12년에 한 번은 대기근이 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중국에 기후에 인한 폐해가 심각함을 보여준다. 특히 양쯔강의 수해를 10년 주기에서 100년 주기로 바꾸어 놓았으며 이는 양쯔강의 홍수예방의 효과로 나타난다. 이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중국인들의 결과물이다. 둘째 환경과 경제는 역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싼샤댐의 완공은 중국의 서부대개발의 출발점이며, 만성적인 전력공급 부족 해결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 많은 이익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양쯔강의 오염은 심각해 졌다. 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장기번영’을 누리는 기간 동안 환경은 더욱 악화되었다는 점과 같다. 세 번째는 싼샤댐의 완공은 다수의 이익을 위함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태학자들은 환경위기의 원인을 인간중심주의라고 본다. 그러나 진정 다수의 위함인지 그리고 환경의 위기가 인간중심주의에 기인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이는 ‘다수의 이름을 가장한 소수의 이익추구’라고 본다.
김지하는 현대 인류가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세계는 병들고 삶은 위태롭다. 인간 내면의 도덕적 황폐와 지구 생태계의 전면적 오염, 그 위에 세계 경제의 위기, 테러와 전쟁, 속수무책의 기상 이변, 그보다 더욱더 심각한 전 인류의 깊이 모를 절망과 문명에 대한 회의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른바 대혼돈(Big Chaos)이며,” 지구촌 곳곳에서 돌출 되고 있는 생명파괴 현상과 전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변화됨에 따라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출현이다. 이는 김지하 시인 혼자의 탄식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보이고 있는 생태계 파괴현상을 우리는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독일의 생태학자 회슬레는 이렇게 말한다. “생태학적 파멸은 아주 근접한 미래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는 숙명적 사건이다. 이러한 파멸을 피하려는 모든 공동의 노력이나 이를 진정시키려는 모든 전략에도 불구하고 생태학적 파멸에 대한 확신은 그 사이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에 자리잡게 되었다.”
현대는 환경위기의 시대이며 이는 인간중심주의와 자연과 인간을 이분화시켜 놓은 서구의 근대 이데올로기 그리고 이에 기인한 산업자본주의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환경의 위기가 인간중심주의라고 보는 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으로 본고에서는 환경 담론에 대해서 살펴보며 특히 근본생태학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목차

1. 서 론

2. 근본생태론이란 ?

3. 환경 위기의 원인

4. 위기의 대안

5. 가끔 악몽과도 같은 근본생태론의 꿈
Ⅰ. ‘인간중심주의’가 ‘인간’중심주의 인가 ?
Ⅱ. 낙관적인 근본 생태론자
Ⅲ. 선사시대로의 복귀 ?

6. 결 론

7. 참고문헌

본문내용

앞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근본 생태론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근본 생태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 생태론은 환경 문제와 관련 근본적 원인에 관해서 체계적인 시도를 했다는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합리적이고 정합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에 의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특히 생태학의 담론이 성립되는 체계적인 과정이 빠짐으로 인해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는 생태학자들이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을 절대적 위치에 상정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자들이 문제인 것이다.
환경이 위기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환경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지속적인 대안과 실천의 과제를 찾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그러나 이 전에 생태학의 담론이 어떻게 형성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진정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특히 생태학 담론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이면에는 권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의 이름으로, 아니면 논의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던 점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모든 생명체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의 종만 살아남은 지구가 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즉 도룡농이 살수가 없다면 인간 역시 살수가 있는 환경 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김항섭, 『생태학의 도전과 그리스도교』, 일과놀이, 2000
문순홍, 『생태학의 담론』, 솔, 1999
문순홍, 『생태학의 담론』, 아르케, 2006
이기상, 『하이데거의 존재사건학』, 서광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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