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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B

주홍글씨와 나사니엘 호손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주홍글씨의 소개와 작가 소개 밑 줄거리 등..

목차

없음

본문내용

▣ 저 자 나사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
청교주의에 정통한 청교주의 비판자.

호손은 작품을 쓸 때마다 항상 아내 소피아의 반응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주홍글씨》를 발표한 후, 이런 기록을 남겼다. ‘소피아는 작품의 결말 부분에 마음 아파하다가 심각한 두통을 앓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래서 그는 후속 작품 《일곱박공의 집》에서는 마지막 부분으로 갈수록 점차 음울한 파국을 향하는 이야기를 의식하고는 ‘결말에 약간의 햇빛을 쏟아부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작가 수업의 시기 - 청교주의의 유산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에서 7월 4일에 출생한 나사니엘 호손은 네 살 때에 선장이었던 아버지가 열병에 걸려 객사하자, 어머니와 누이 엘리자베스와 루이자와 더불어 외가로 이사해 쭉 외가에서 성장하였다. 외가인 매닝가에는 외할머니를 비롯하여 많은 이모들이 있었고, 따라서 호손은 어린시절 자신의 누이들과 어머니를 포함하여 많은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성장했다. 이런 사실은 호손이 당대의 어떤 남성작가보다도 여성인물을 많이 창조하였으며 여성의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보여준 것을 설명해준다.

그는 메인 주에 위치한 보우든 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인 세일럼으로 돌아가 약 12년간 어머니와 누이들과 살던 집의 다락방에서 독서에 몰두하며 지낸 것으로 유명하다. 소문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에 호손은 사람들과 거의 교제를 하지 않고, 낮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으며, 밤에만 거리를 배회하였다고 한다. 호손의 이같은 내향적 특성은 흔히 청교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은 음울한 세계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은 호손은 자신과 청교주의 조상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려 한 것으로 오히려 유명하다. 호손은 1828년경 원래는 Hathorne이었던 성에 w를 첨가하여 Hawthorne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은 호손이 자신과 청교도 조상들을 분리하려고 한 행동으로 생각된다. 호손의 조상들 중에서 존 호손은 세일럼의 마녀재판에서 주역 노릇을 한 재판관이었고, 그 전대의 윌리엄 호손은 퀘이커교도들을 이단으로 몰아 박해한 것으로 유명했다. 호손은 몇몇 중요 단편들에서나 《주홍글씨》에서 교조적이며 독단적인 청교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세상과의 교제를 시작하다
어쨌든 세일럼에 칩거한 12년 동안은 호손에게는 문학수업의 시기였다. 이 기간 동안에 호손은 단편소설을 익명으로 기고해 출판하곤 했는데,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던 엘리자베스 피바디는 그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1837년 11월에 이루어진 피바디가의 방문은 호손에게 인생을 바꿔놓을 사건이 된다. 엘리자베스 피바디에게는 소피아라는 병약한 여동생이 있었는데, 호손은 소피아를 만난 후 그녀에게 강렬한 관심을 갖게 된다.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4년여에 걸쳐서 열렬한 연애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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