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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원주(문막)지역 방언 연구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열심히 했습니다 ! ㅎ
참고하세요 ㅎ
물론 저희조는 에이쁠 받았습니다 ! ㅎ

목차

제 1 절 개 요
제 2 절 원주 지역어(地域語)의 개관
제 3 절 문법(文法)
제 4 절 어휘(語彙)
1. 원주방언(원주지역어)
2. 원주권 방언
3. 영서(嶺西) 방언
제 5 절 음운체계(音韻體系)
1. 자음체계(子音體系)
2. 모음체계(母音體系)
제 6 절 음운(音韻) 현상
1. 경음화(硬音化)
2. 유기음화(有氣音化)
3. 구개음화(口蓋音化)
4. 자음탈락(子音脫落)
5. 음운첨가(音韻添加)
6. 음절축약(音節縮約)
7. 어중자음(中子音) ‘ㅅㆍㄱㆍㅂ’
8. ㅣ모음(母音) 역행동화(逆行同化, 움라우트)
9. 단모음화(單母音化)
10. 전설고모음화(前舌高母音化)
11. 후설고모음화(後舌高母音化)
제 7 절 원주 방언의 주요 어휘(語彙)
1. 체언
2. 용언
3. 조사와 어미
4. 부사
제 8 절 맺음말

본문내용

제 2 절 원주 지역어(地域語)의 개관


원주 지역은 본래는 마한(馬韓)의 땅이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한(韓)의 언어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기전 18년에 백제가 온조왕에 의해 건국되면서 통치권에서는 북방계인 부여어(夫餘語)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장수왕 57년(469)에 고구려에 소속되면서 원주는 평원군(平原郡)이 되어 중부 지역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100 여 년 동안 부여어는 계속 통치어로 지역어에 스며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진흥왕 때(540~575) 한강 유역까지 통치하게 되면서 원주는 신라에 속하게 된다. 이어 삼국통일 뒤인 신문왕 5년(685)에 구주(九州) 오소경(五小京)이 설치되면서 원주는 소경인 북원경(北原京)으로 승격이 되었다. 이때부터 250 여 년 동안은 신라어인 경상방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한 통치 지역이 아니라 소경으로서 중부권을 대표하는 중심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가 918년에 건국되고, 원주는 태조 23년(940)에 원주군(原州郡)이 된다. 성종 14년(995)부터 100 여 년 동안은 중원도(中原道, 지금의 충북)에, 현종 9년(1018)에 충주목(忠州牧)에 속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종 때(1105~1122)에 오도(五道) 양계(兩界)로 개편되면서 원주는 교주도(交州道, 지금의 영서지역)에 속하게 된다. 원주는 원종 10년(1269)에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 충렬왕 17년(1290)에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가 되고 34년(1308)에 원주목(原州牧)이 되어 중부 지역의 중심도시가 된다. 따라서 고려조 450년 동안은 중부방언이 원주지역어의 중추가 되어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 4년(1395)에 강원도(江原道)가 되면서 관찰부(觀察府)가 원주에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1895년에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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