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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실태와 운영활성화 방안 연구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8페이지 | 가격 7,000원

소개글

현대사회에 이르러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등의 급격한 사회구조의 변화로 인해 보건의료수준의 향상, 경제력 향상,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 영양상태 양호 등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됨으로써 고령사회가 도래하였다. 특히 노인인구의 증가와 가치체계의 변화 그리고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고령계층과 연관된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노년기의 문제는 경제력 빈곤, 건강악화, 역할 상실, 고독과 무료함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무위(無爲)는 사회적인 은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역할상실 또는 여가시간의 증가로 인한 무료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이 크게 대두되게 된다(임춘식, 2001).
건강한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은퇴 이후의 노년기 생활문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길어진 노년기의 고독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대다수의 노인들은 가정 외에서 그들의 여가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농어촌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노인들이 모여서 일과를 보내거나 소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노인 여가 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경로당이 양적 증가를 거듭해 오면서 그 중요성도 날로 증대되고 있다.
경로당은 법적 노인여가복지시설이다. 노인복지법에 명시되어 있는 노인여가복지시설에는 노인복지회관, 노인교실, 경로당, 노인휴양소가 있다. 이 중에서 경로당은 지역 노인들이 자율적으로 친목도모, 취미활동, 공동작업장 운영 및 각종 정보교환과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함을

목차

Ⅰ.서론

Ⅱ.연구방법
1. 연구대상 및 자료 분석
2. 조사내용
Ⅲ.이론적 배경
1. 경로당의 개념
2. 경로당의 발전배경
3. 경로당의 기능과 역할
Ⅳ.경로당 실태 분석
1. 일반현황
2. 경로당시설․ 일반현황
3. 이용실태
4. 재정상태
5. 지역사회와의 관계
6. 경로당 프로그램
Ⅴ.경로당의 활성화 방안
1. 경로당 관련 기존연구 검토
2. 조사결과 문제점 및 개선방안
Ⅵ.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Ⅲ. 이론적 배경

1. 경로당의 개념

일반적으로 경로당은 지역사회 노인들에게 건전한 여가활동 공간을 제공하여 그분들로 하여금 여가, 오락, 소득보장, 부업활동 등을 충족시켜 주는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부분적으로나마 노인 주간 보호센터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경로당은 지역사회 노인들로 하여금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장소와 기회를 제공하는데 언제든지 쉽게 만나 장기, 바둑, 화투 등과 같이 항상 부담 없이 그 자리에서 진행할 수 있는 오락을 즐길 수 있으며 오락 기구를 활용한 오락, 게임 등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로당은 노인들의 오락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장소가 될 수 있다(조소영, 2001).
이와 같이 경로당은 노인들의 여가 행위에 따른 놀이와 휴식공간으로서 노인들이 노인 상호간의 친목과 화합 생활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장고와 춤 등을 즐기며 하루를 소일하는 장소(최순남, 1995)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로당은 농촌사회의 사랑방 모임과 같은 자주적인 조직이 현대사회에 계승된 것으로 경로당이란 이름은 모임의 장소로서의 시설로 지칭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경로당은 전통적 사랑방모임과 같은 자주적인 조직의 성격에 노인복지의 시설적인 의미가 가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경로당과 노인정의 의미는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경로당을 노인 여가 시설의 하나로 지역의 노인들이 자율적으로 친목도모, 취미활동, 각종 정보교환 등과 기타 여가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를 제공함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 정의해 볼 수 있다.

2. 경로당의 발전배경

경로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누각, 정자, 사랑방이 있었다. 누각은 선비나 양반들이 시나 향연을 베풀던 곳이며 정자는 서민층이 주로 더위를 피하여 쉬던 곳으로서 동네 어귀에 위치하였다. 노인들이 계절에 관계없이 수시로 모여 대화를 나누던 가장 통속적인 장소는 사랑방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랑방은 경제적으로 여력이 있는 집에서 바깥채의 큰 방 하나를 마을 사람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도록 제공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러나 그 운영과 관리는 집주인이 책임을 졌다. 당시의 사랑방은 오늘날의 경로당 또는 마을회관과 같이 누구를 막론하고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된 상태는 아니었다. 집주인이 음식을 제공하거나 행인에게 숙식을 허용하기도 했으나 집주인과의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에는 사랑방 출입이 사실상 어려웠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었다. 촌락사회의 미풍양속 중 하나였던 우리나라의 사랑방 제도는 일제강점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건국 초 토지개혁 정책에 의한 농토분배로 부유층 농가의 몰락, 그리고 6.25전쟁의 격동기를 겪는 동안에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임판호, 1995). 이와 비슷한 것으로서는 지방에 따라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초당”이라고 불리던 곳이 있었다.
1940년대 들어서면서 사랑방을 폐쇄하는 촌락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지역에 따라서는 노인들이 마을 어귀나 여름철에는 느티나무 그늘 밑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소일하기도 했다. 한편 도시 복덕방 주변이나 가로수 그늘진 곳, 그리고 공원 등지를 여가 활용장소로 활용해 왔으며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사유지나 국유지 공터에 판잣집 형태의 가건물을 지어 그곳을 여가장소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자유당 시대에서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약 20년간 도시와 농촌에서 경로당의 수가 급증하였는데 그 주된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의 선심공약의 결과이며 그중 여권후보들은 행정부에 교섭하여 정부 예산으로 경로당을 건립한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임시변통의 무허가 판잣집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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