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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보고서]죽주산성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7.03.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경기도 안성에 소재한 죽주산성을 답사하고 쓴 답사보고서.

목차

․ Prologue

․ 죽주 산성의 형태

․ 죽주 산성의 기본정보

․ 죽주 산성의 역사적 의의와 특이점

․ 죽주 산성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 Epilogue

본문내용

Prologue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역사 속에서 외세의 침략을 무찔러가며 싸워왔고 그 싸움들이 헛되지 않았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까지 이어져 왔다. 한때 호태대왕과 장수왕 시절의 국토와 발해의 영역을 생각해본다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에 만족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과 반론도 제시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열악한 지리적 조건과 수많은 외세의 침략, 특히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이라던 지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고, 일제 강점기 등을 거쳐 오면서도 나라를 잃지 않고 한민족의 이름으로 나라를 지켜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역사라 하겠다.
그 역사를 지켜온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의 ‘성’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는 수많은 성곽이 남아 있다. 높은 산에는 산성(山城)이 있고 야트막한 산에는 토성(土城)이 있으며 평지나 바닷가에서는 퇴락했지만 역사의 이끼가 덮인 읍성(邑城)의 성벽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성은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성과는 또다른 문화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국토수호의 산물이며 호국 의지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중국의 성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일본의 성처럼 미적 요소를 부각시킨 것도 아니지만, 우리나라 지형에 국토수호에 있어서는 특화된, 효과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 세종 때 ‘양성지’는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라고 했으며 일찍이 중국에서도 “고구려 사람들은 성을 잘 쌓고 방어를 잘 하므로 함부로 쳐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 였다.

성곽의 기원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성곽이 나타났는지는 분명히 밝힐 수 없다. 문헌상에 나타난 것으로는 「사기(史記)」조선전(朝鮮傳)에 평양성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처음인데 이는 대체로 기원전 2세기에 해당된다.
“한(漢)이 위만을 침공했을 때 왕검(王儉)에 이르니 우거(右)가 성을 지키고 있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고조선의 말기에는 성곽이 있었음이 분명하고 여러 달이 지나도 성을 함락시키지 못할 정도로 본격적인 성곽전(城郭戰)이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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