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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친일파][을사오적][이완용][박제순][권중현][이지용][이근택][친일파청산][친일행위]일제시대 친일파 행동 양태와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권중현, 이지용, 이근택)(친일파, 친일파청산, 친일행위)

저작시기 2007.03 |등록일 2007.03.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7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일제시대 친일파 행동 양태와 을사오적(이완용, 박제순, 권중현, 이지용, 이근택) 심층 분석

목차

Ⅰ. 서론

Ⅱ. 일제 시기 친일파의 행동 양태
1. 3.1 운동 무렵의 친일파
2. 일제 문화운동에 동원된 거물급 민족주의자
3. 내선일체의 기수들
4. 민족대표 33인 중의 훼절

Ⅲ. 을사오적
1. 친일파 이완용
2. 친일파 박제순
3. 친일파 권중현
4. 친일파 이지용
5. 친일파 이근택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해방 반세기에 가까운 오늘까지 친일파 또는 친일세력이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을 형성해 왔고, 또한 이들은 영원한 기득층으로 세습화되고 있다. 친일세력은 민족통일보다 분단을, 민족자주보다 사대예속을, 민주주의보다 독재지배를 택했다. 이런 비정상에서만이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할 수 있고, 기득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밝은 태양 아래서는 살 수 없는 박쥐나 두더지처럼 이들은 분단과 독재와 부패의 늪지대에 또아리를 틀고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짓밟아왓다. 직접 친일을 한 친일파는 물론 그들의 2세, 3세 또 그 잔당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 걸쳐 실세로써 행세하고 있다. 이들이 세운 친일정권은 일본의 신군국주의 세력과 유착하여 경제에속을 가속화시키고, 소득격차․지역분열을 조장하여 갈등과 대립을 심화시키고 있다.

Ⅱ. 일제 시기 친일파의 행동 양태

1. 3.1 운동 무렵의 친일파

親日派에게 貴族 身分을 配給
1910년 6월부터 나남, 청진, 함흥, 대구의 일본군들이 한밤중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길을 통해서 서울로 진입해 왔다. 이들 응원 병력과 용산 주둔 일본군 제2사단의 철통 같은 경비망 속에서 8월 22일, 나라와 백성을 팔아넘기는 병합조약이 조인되었다.
이 일을 주동적으로 수행한 이완용. 박제순. 송병준 이하 76명에게 논공행상으로, 혹은 회유를 위해서 일제는 귀족의 신분을 배급했다. 후작(Marquis) 6명, 백작(Count) 3명, 자작(Viscount) 22명, 남작(Baron) 45명인데 김석진 등 8명이 남작의 수령을 거절했다. 이후 1920년대로 들면서는 이완용이 백작에서 후작으로, 고희경과 송병준이 자작에서 백작으로 승급사고 이완용의 차남인 이항구에게 추가로 남작이 수여된다. 이리하여 작위를 받은 최종 숫자는 후작 7명, 백작 4명, 자작 20명, 남작 38명으로 총원 69명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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