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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시드]스페인 문화와 예술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7.03.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스페인문화와예술] 수업의 엘시드와 국토회복운동, 레콩키스타 등 에 대한자료들입니다.

목차

1. 엘시드 - 실존인물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2.국토 회복 운동
3. 레콩키스타-이슬람 왕국과 기독교 왕국의 격돌
4.적과 대결하여 닮아가는 스페인의 정체성
5.레콩키스타의 완성과 1492년
6.관용과 불관용 사이에서의 선택-엘시드

본문내용

1. 엘시드 - 실존인물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

엘시드라고 알려진 유명한 기사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는 11세기 중엽에 Burgos에서 태어났다. 그는 스페인의 국민적 영웅이었으나 역사상에 나타난 것과 전설상에 나타난, 두 가지의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역사가들에 따르면 그는 잔인하고 인색했으며 관용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엘 시드는 전설상에서 스페인 민족의 모든 이상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는 모든 귀족 가문의 청년들처럼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궁정 관습들을 배웠다. 아주 젊었을 때부터 산쵸 2세의 왕궁에서 살았다. 산쵸 2세는 그를 보호하고 도와주었으며, 심지어는 그의 무술 사범까지도 택해 주었다. 그는 왕과 함께 사방팔방으로 다녔고, 대단한 용기를 가진 군인으로 두드려져 보였다. 그가 역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스티야와 아라곤과의 전쟁을 통해서였다.
아버지가 유산을 남겨준 동생들을 제거한 산쵸 2세는 암살당하여 죽었다. 그래서 그의 동생 알폰소 6세가 카스타야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카스티야의 귀족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2명의 용감한 기사들은 산쵸 2세의 암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맹세를 왕에게 시키기 위해서 엘시드를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선출했다. 왕은 자신을 모욕한 엘시드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고, 어느 시기가 되자 그를 Castilla 왕국에서 추방했다. 엘시드는 그의 두 딸과 그의 아내를 두고 떠나야만 했고, 그들은 곧 자신들의 모든 재산을 잃고 말았다.

2.국토 회복 운동
711~1492년 까지 780년 동안 에스파냐의 그리스도교가 이슬람교도에 대하여 벌인 실지 회복운동.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 하였을 때, 에스파냐 귀족들은 북쪽의 칸타브리아산맥, 동쪽의 피레네 산맥으로 도피하였으며, 이 지역을 거점으로 동서 양 방면에서 국토 회복운동을 벌였다. 먼저 서부 방면에서는 718년 펠라요라는 서 고트족 귀족이 이슬람군을 격파하고 아그투리아스 왕국을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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