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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의 슬견설 분석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3.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에이뿔 받은겁니다.

목차

1. 이규보
2. 출전
3. 슬견설 원문 강독.
4. 학습활동
5. 슬견설을 쓴 이유
6. 나의 생각
7, 비평

본문내용

1. 이규보(李奎報)

고려시대의 문신 ·문인으로서 본관은 황려(黃驪:驪興)이다. 자는 춘경(春卿)이며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지헌(止軒)·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고, 시호는 문순(文順)으로 고려 무신집권기에 활약한 민족의 대문호이다. 12~13세기 거란. 여진. 몽고 등 북방민족의 계속된 침략과 무신의란 등 나라 안팎에 몰아치는 민족의 수난기 속에서 그 저항정신을 문학으로 표현하였으며, 역사와 현실을 자각한 시인이자 독창적인 이론가로서, 민족 대서사시 "동명왕편"등 민족문학사에 크나큰 업적을 남겼다. 9세 때부터 중국의 고전들을 두루 읽기 시작하였고,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으며 14세 때 사학의 하나인 성명재의 하과에서 시를 빨리 지어 선배문사로부터 기재라 불렸으며 장래가 촉망되었다. 이때 그의 희망은 입신출세(立身出世)하는 거였고 이로 인해 과거지문(科擧之文)을 하찮은 소인배들이 배우는 일로서 멸시하였고, 이에 사마시에 계속해서 낙방하게 된다. 16세부터 4, 5년간 자유분방하게 지냈으며, 기성문인들인 강좌칠현(江左七賢)과 기맥이 상통하여 그 시회에 출입하였다. 이들 가운데서 오세재(吳世才)를 가장 존경하여 그 인간성에 깊은 공감과 동정을 느끼곤 하였다. 1189년(명종 19) 사마시에 그리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팔관회(八關會) 행사에 잘못을 저질러 한때 위도에 유배되었으나 다시 벼슬에 올라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감수국사(監修國事)·태자대보(太子大保)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호탕 활달한 시풍은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는 유명하다. 몽골군의 침입을 진정표(陳情表)로써 격퇴한 명 문장가였으며, 시·술·거문고를 즐겨 삼혹호선생이라 자칭했으며, 만년에 불교에 귀의했다. 그는 문학적 영예와 관료로서의 명예를 함께 누렸으며 권력에 아부한 지조 없는 문인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대 몽골 항쟁에 강한 영도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정권에 협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우리 민족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외적의 침입에 대해 단호한 항거정신을 가졌다. 그리고 국란의 와중에 고통을 겪는 농민들의 삶에도 주목, 여러 편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이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 시(詩)에 〈천마산시(天摩山詩)〉 〈모중서회(慕中書懷)〉 〈고시십팔운(古詩十八韻)〉 〈초입한림시(初入翰林詩)〉 〈공작(孔雀)〉 〈재입옥당시(再入玉堂詩)〉 〈초배정언시(初拜正言詩)〉 〈동명왕편(東明王篇)〉, 문(文)에 〈모정기(茅亭記)〉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大藏經刻板君臣祈告文)〉 등이 있다.

참고 자료

김진영.『이규보문학연구』, 집문당

조동일.『한국문학통사』 , 지식산업사

조동일.『한국문학사상사시론』, 지식산업사

이대규. 『수필의 해석』, 신구문학사

한계전외 4인. 『문학개론』, 민지사

박진호. 『이규보의 경설』 , 논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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