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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파에 대해서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7.03.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구역사학파와 신역사학파를 나누고 그에 따라 학자별로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목차

Ⅰ.시대적 배경

Ⅱ. 구역사학파
(1). 시대적 배경
(2). 로셔
(3). 힐데브란트
(4). 크니스

Ⅲ. 신역사학파
(1). 시대적 배경
(2). 슈몰러
(3). 바그너
(4). 브렌타노
(5). 좀바르트
(6). 베버

Ⅳ.역사학파의 해체

본문내용

Ⅰ. 시대적 배경

역사학파는 리스트(Friedrich List, 1789 ~ 1846)에 의해 시작하여 로셔(Wihelm Roscher, 1807 ~ 1894),힐데브란트(Bruno Hildebrand, 1821 ~ 1878), 크니스(Karl Knies, 1821 ~ 1898), 슈몰러(Gustav Schmoller, 1838 ~ 1927), 브렌타노(Ludwig Joseph Brentano, 1884 ~ 1931)를 거치면서 형성된 독일 특유의 경제학파이다.
독일철학에 있어서는 헤겔(Georg Hegel, 1770 ~ 1831)과 피히테(Johann Fichte, 1762 ~ 1814)가 절대적이지만, 경제학에는 낭만주의가 더 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낭만주의는 엄격한 의미에서 학파는 아니지만 주로 문학을 중심으로 지성인들이 지나친 지식과 윤리의 노예가 되는 것에 반발하는 반지성주의라 할 수 있다. 낭만주의가 그 당시 독일에 팽배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시대적 현실 때문이었다. 19세기 초에 독일은 아직 봉건적 농업국가인데다가 예나전투에서 프랑스에 패배함으로써 치욕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므로 이러한 패배의식을 씻고 국민적 긍지와 이상을 갖기 위해서 환성적인 낭만주의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목가적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이것이 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그당시 독일은 39개의 영주국가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기 중상주의정책을 추구하였으므로 서로 목을 조이는 결과가 된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는 이미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건설해서 통일된 국내시장을 상대로 대규모의 공장제도가 확립되었으나, 독일은 조그마한 나라들로 분할되어 좁은 국내시장을 상대로 한 수공업제도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생산성이 낙후되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것이 비단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염원이었으며, 피히테의 「과학이론의 원리에 따른 자연법의 기초」와 「독일국민에 고함」이 독일 낭만주의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인간의 존업성」에서 자아를 철학의 중심으로 삼았으나, 국가는 자연의 결과이며 국법은 자연의 권리표현으로 보았다.

참고 자료

① 경제학사 : 경제혁명의 구조적 분석 / 주명건, 박영사
② 인물경제학사 / 박장환 저, 법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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