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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시인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7.03.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1970년대 전기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시기이다. 사회적으로 볼 때는 1960년 이후 군사적 억압으로 국민을 통치하던 박정희 독재가 내부로부터의 궤양으로 서서히 자멸의 길로 접어들 때였고, 문학적으로는 서구시, 그중에서도 모더니즘 시의 영향으로 병들었던 우리 시가 민중적인 자각을 거쳐서 새로운 민족시의 틀을 만들어가고 건강을 되찾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70년대 후반은 ‘유신’이라는 이름의 가혹한 독재체제가 이 땅의 자유로운 정신들을 짓누르던 시대이다. 하지만 그러한 폭압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시적 대응은 도무지 위축되지 않았다. 문학사적으로는 70년대 후반은 민족현실에 대한 정당한 관심을 필요조건으로 하는 민족문학이 확고히 자기 자리를 잡은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70년대 이래로 줄기차게 전개되어온 민주와 독재 간의 대립, 미국 및 매판세력을 겨냥한 민중의 자각과 싸움은 군부의 하수인과 계승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존립에 위기를 느끼게 했으니 12·12사태의 핵심은 바로 이 점과 직결된다 하겠다. 반민족·반민주·반민중 세력에 대한 보다 강고한 인식이 민중들에게 심어지고, 변혁주체로서의 민중이 점차 역사의 표면에 떠오르게 되자, 외세에 대한 방어적 인식도 아울러 정비되기 시작하였으니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80년대 우리 사회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80년대’라는 깊고 길며, 절대 다수의 시인들은 차분히, 혹은 역동적으로 자신의 정리하며 다가올 불안한 시간에 대한 응전력을 키워온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1970~80년 시대의 민중시인들 중 문병란, 김지하, 김남주를 대표적으로 그들의 생애와 그들이 추구했던 시세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목차

1. 서론
2. 본론
2.1. 김남주
2.2.1. 김남주의 생애
2.2.2. 김남주의 시세계
2.2. 김지하
2.2.1. 김지하의 생애
2.2.2. 김지하의 시세계
2.2.3. 김지하 시의 특성
2.3. 문병란
2.3.1. 문병란의 생애
2.3.2. 문병란의 시세계
2.3.3. 문병란 평가
3. 결론

본문내용

2.1. 김남주

2.1.1. 김남주의 생애
- 노래하는 전사 김남주

김남주는 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아버지 김봉수의 3남2녀중 2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청년시절 소작농으로 출발하여 김남주가 태어날 무렵에는 소농으로, 다시 김남주가 중학 진학 무렵에는 중농으로 성장한 근검 절약의 전형적 농민이었다.
해남 중학을 거쳐 호남의 명문이였던 광주일고에 진학하여 집안과 고향의 촉망을 받는 학생이었다. 광주 학생운동의 전통에 빛나는 광주일고에서 획일적인 입시위주 교육에 반대하여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전남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했다. 재학시 도서관을 가장 많이 이용한 학생으로, 같은 동료 학생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독서와 사색으로 많은 미발표 습작을 남겼다.
삼선개헌 반대투쟁, 교련 반대투쟁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을 갖게 되고 자주적 근대의 여명인 실학사상과 반외세 반봉건의 갑오 농민전쟁의 역사의식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박정희 10월 유신독재의 출현에 의해 강탈당한 민족적 자존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애정으로 동지 이강과 함께 갑오 농민전쟁 전적지 역사순례를 다니면서 반유신 민주화투쟁을 결단하였다. (함성)이라는 반독재 비합법 신문을 광주시내 일원에 뿌리고 다시(고발)이라는 제하의 유신독재타도를 외치는 신문을 전국 각 대학에 배포하려다 발각되어 세칭(전남대학교 함성지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어 징역 2년에 3년간 집행유예의 형을 선고받고 1년만에 석방되었다.
그후 74년 4월 긴급조치 4호에 의한 세칭(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많은 동료들이 체험을 (진혼가)(잿더미) 외 수편의 충격적인 시로 (창작과 비평)지에 발표하였다. 무기력한 한국 문단에 새로운 충격과 기대를 불러 일으킨 참신한 시풍이었다. 그후 김남주는 카프카 서점을 통한 후배의 의식화 활동을 하다가 경영실패로 귀향하여 해남에서 농사를 돌보면서 작가 황석영과 교류하면서 노어민 기독교 농민회 등의 창립발전에 기여하였다.

참고 자료

김남주

김남주 시집, 「조국은 하나다」, 도서출판 남풍,1988.
김남주 시집,「나의 칼 나의 피」, 실천문학사,1993.
김남주 시집,「사상의 거처」, 창작과 비평사,1991.
김남주 산문집, 「시와 혁명」, 창작과 비평사,1989.
김준태 ․ 이강 외, 「 김남주論 」, 도서출판 광주,1988.
이종찬, 「김남주의 삶과 문학」, 시와사회와, 1994.

김지하

김지하,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동광출판사, 1984.
민영외 3인, 「한국현대대표시선3」, 창작과비평사, 1993.
임헌영외 1인, 「김지하 그의 문학과 사상」, 세계, 1985.
푸미오 타부치, 「김지하론 · 신과 혁명의 통일」, 다산글방, 1991.
홍용희, 「김지하 문학연구」, 시와시학사, 2000.

문병란

문병란,『견우와 직녀』, 한길사, 1991.
문병란,『새벽이 오기까지는』, 일월서각, 1994.
문병란,『새벽의 차이코프스키』, 계몽사, 1997.
문병란,『인연서설』, 시와사회, 1999.
허형만 ․ 김종, 『문병란 시 연구』, 시와사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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