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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의 숨 쉬는 왕릉, 선릉

저작시기 2006.06 |등록일 2007.02.2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100원

소개글

2호선 선릉역에 내리면 도심 속의 왕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도시인들의 쉼터 기능을 하고 있지만, 조선의 성군이었던 성종의 왕릉인만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릉을 직접 답사한 후 작성한 레포트로서, 좋은 점수와 평을 받았습니다. 직접 디카로 찍은 사진들을 첨부하였기 때문에, 답사보고서로는 최고의 기능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차

1. 선릉(宣陵)의 위치 및 관람안내
2. 성종의 삶과 업적
3. 성종의 가족들
4. 선릉(宣陵)에 대한 답사

본문내용

정자각은 중국의 경우 황제국이었기 때문에 매우 크게 지었지만 조선의 경우 제후국을 자처하였기 때문에 작게 지어 왕의 위패를 모셔 두었다고 하였다. 과연 실제로 보니 그 크기가 결코 크지 않아 아담한 느낌을 주었다. 단청색깔이 너무 고와서인지 필자는 선릉의 정자각에서 새색시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담한 크기이며 고운 선으로 이루어진 정자각이 필자에게는 영락없는 새색시로 보였던 것이다. 이 정자각은 강의 정면이 아닌 측면에 놓였는데 이는 동역이강의 양식에 따른 것이다.
그림 1 성종의 능그림 2 병풍석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조선 왕릉에 있어서 강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풍수상 땅속을 흐르는 생기는 흙을 몸으로 삼기 때문에 생기의 몸, 곧 생기의 저장탱크 위에 왕릉 봉분이 올라타고 있어야 생기를 가장 많이 받을 거라는 풍수승생기목적을 달성하려는 풍수시각이 그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일반 무덤들과는 달리 높은 권좌에 등극한 왕처럼 높은 강을 권좌로 삼아 등극한 왕릉을 보여주는 시각적 효과의 유교 통치술이라 할 수 있다. 강은 사초지라고도 부른다.
그림 3 선릉의 여유로움동역이강 양식의 정자각 배치는 능제 용도상 능침사이에 두고 있다. 이는 아버지 제사 때 고인이 된 어머니가 있을 경우 제사상에 밥그릇 두 개를 놓는 배치와도 같다. 두 개의 밥그릇이 봉분들이고 정자각을 제사상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자각의 지붕위로 잡상들이 늘어져있었는데 이들의 역할은 사악한 기운을 막는 것이다. 그 사악한 것들을 막는 선두에는 꾀 많은 원숭이가 서 있었다.
정자각을 본 후 우거진 나무숲사이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풀밭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이 즐비했다. 필자는 이러한 점이 선릉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도심 속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휴식공간이자 바쁜 일상을 피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곳인 선릉은 이렇게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존재하였던 것이다.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성종의 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정작 능의 구경은 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이미 몇 번을 보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필자뿐이었다.
세조의 ‘석실이 유해무익하니 원․능은 석실과 병풍석을 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성종능에는 석실이 없다. 하지만 병풍석은 존재하여 봉분의 아랫부분에 각각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형태인 12면으로 둘러져있다. 땅을 지키는 열두 신장을 십이지신 또는 십이신왕이라 하는데, 이들은 열두 방위에 맞추어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얼굴 모습을 가지며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병풍석에 새겨진 이들의 모습은 거의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 필자의 눈에는 다른 동물들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참고 자료

한국문원 편집실, 『왕릉』, 한국문원, 1995.
장영훈 저, 『왕릉풍수와 조선의 역사』, 대원미디어,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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