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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12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와 시해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나는 근현대사의 이해의 역사 만들기의 과제를 무엇을 할까? 하고 고민하던 중 우연히 학교를 다니다 보니 자료도서관 앞에 걸려져 있던 명성황후 뮤지컬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때 내가 과연 명성황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며 말이 많았던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대한 의문이 생겨 이글을 써본다.
나는 명성황후 인물에 대한 생각과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숨겨진 진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우선 명성황후에 대해 살펴보면, 조선 고종의 비로써 다른 이름으로 민비라 불린다.
1851년에 태어나 16세 때 대원군의 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의 비가 되었다.
대원군이 역대의 세도 정치를 근절할 목적으로 가문이 외롭고 단출한 민씨 집안에서 왕비를 택하였다.
하지만 1873년에 왕자 척을 낳은 후 명성황후의 친족이 정권을 잡으려 하자 대원군이 이를 막기 위하여 궁녀 이씨의 아들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양자의 싸움에 명성황후는 드디어 대원군을 탄핵하고 고종으로 하여금 직접 정사를 돌보도록 한 후, 끝내는 대원군 일파를 모두 쫓고 나라의 문을 열어 일본과 수교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에 도움을 청해 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해 가게 하였다.
1884년 갑신정변으로 민씨 일족이 실각하자 다시 청나라를 끌어들여 개화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김홍집 등의 친일파가 정권을 잡게 되자 러시아 힘을 배경으로 세력을 펴 친일파의 세력을 물리치려 하다가 1895년 을미사변 때 일본 공사 미우라의 부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1897년에는 명성황후라는 시호가 내렸다.
옛날 우리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말과 함께 크게 인기를 끌었던 명성황후의 드라마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드라마나 다른 매체를 통해 명성황후는 못된 일제 제국주의에 의해 능욕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나라 생각을 했던 불쌍한 사람이라고만 생각 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번 자료들을 보면서 명성황후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 보았다.
명성황후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당시 약국 중에 약국 이었던 우리나라 사정에 맞춰 대국에 나라를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서로의 대국끼리의 견제를 하게 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를 막으려고 한점은 좋은 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명성황후의 20여년에 걸친 그녀의 집권기에 시행된 정책과 그 결과를 바탕으로 냉정하게 평가 해 보고 싶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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