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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조상]의령(宜寧) 南氏(남씨)에 관한 보고서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11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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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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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본관은 영양(英陽) ·의령(宜寧) ·고성(固城) ·남원(南原)의 4본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조에서 분파된 혈족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그는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신라왕으로부터 이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진용(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홍보(洪甫)는 영양, 둘째 군보(君甫)는 의령, 막내 광보(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이 중에서 둘째 집인 의령남씨는 이조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서 중앙정계의 중추에 진출하여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개국공신 재(在) ·은(誾) 형제 중 재의 후대에서 많은 경상(卿相)과 석학이 나왔다. 재의 손자 3형제 중 지(智)는 좌의정, 간(簡)은 예문관 직제학, 휘(暉)는 태종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이밖에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곤(袞), 세조 때 장군 이(怡), 생육신의 한 사람인 효온(孝溫), 소북(小北)의 영수 이공(以恭), 소론(少論)의 영수 구만(九萬), 영조 때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유용(有容),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공철(公轍), 철종 때 대제학을 지낸 병철(秉哲), 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이웅(以雄), 정묘호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성을 사수하다가 자결, 순절한 이흥(以興)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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