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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고려 상인은 무엇을 사고 팔았나?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10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11 ~ 12세기의 고려상인들의 활동에 관하여 적은 레포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 전기의 대외관계
3. 고려의 무역정책
4. 나라별 교역물품과 특징
5. 맺음말

본문내용

2. 고려 전기의 대외관계
고려는 신라, 조선과 달리 어느 한 나라를 중심으로 한 외교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다원적인 외교 정책을 전개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명, 청처럼 300여 년 동안 지속된 평화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시기에는 송, 요, 여진(금)이 불과 200여년 사이에 흥망을 거듭했다. 그래서 특정한 명분에 사로잡히지 않은 정책을 펴게 된 것이다.
960년에 송이 건국되자 고려는 곧바로 토산물을 바치고, 송의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국교를 열었다. 고려와 송은 당시 국제 정세로 인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비해 교류가 활발했다. 사절의 왕래가 정치적인 이유에 의해 줄어들기도 한때도 있었지만 상인들 간의 왕래는 계속 유지되었다. 한때 요와 여진의 간섭을 받고 그들의 연호를 사용한 시기에는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했다. 고려에서 994년 이후 20년간 사절을 보내지 않았고, 1021년부터 1071년까지 50년간 사절을 보낸 기록이 없다.
이러한 양국 간의 왕래는 해로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중국 북부 지방을 요와 금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절풍을 이용하여 쉽게 오고갈 수 있도록 주로 6월~8월 사이에 왕래가 집중 되었다.
한편 요와 고려 간의 관계는 10세기 말에 3차례의 전쟁을 치룬 이후 별다른 마찰이 없었다. 전쟁이후에는 형식적으로 요의 왕으로부터 책봉을 받고 사절을 교환했다. 고려에서 보내는 사절로는 계절별로 보내는 문후사, 왕의 생일 축하사, 새해 축하사, 토산물을 바치는 진봉사가 있었다. 그런데 11세기부터 문후사와 생일 축하사를 통합하여 오고가는 횟수를 연 9회에서 5회로 줄였다. 요에서 거란에게 보내는 사절은 고려왕의 생일 축하사 뿐이었다.

참고 자료

박용운 외 지음, 『고려시대 사람들 이야기 2 - 경제․사회』, 신서원, 2002
조동원 외 지음, 『고려도경』, 황소자리, 2005
한국역사연구회,『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2』, 청년사, 2005
박옥걸,「高麗來航 宋商人과 麗․宋의 貿易政策」『대동문화연구』32집, 1997
박한남,「12세기 麗金貿易에 대한 검토」『대동문화연구』31집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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