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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회와 문화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10 한글파일한글 (hwp) | 27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조선에 관한 글.

목차

제1장 양반관료국가의 성립과 발달
제2장 양반관료국가의 구조
제3장 16-17세기 양반관료체제의 해이
제4장 조선전기의 문화
제5장 17, 18세기 양반사회의 붕괴
제6장 근대적 사상의 맹아
제7장 양반정치의 파탄과 민중의 반발

본문내용

제1장 양반관료국가의 성립과 발달
근세 조선왕조의 성립과 왕권의 확립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전에 고려 도평의사사에서 추대로 왕으로 등극하였다. 고려말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한 이성계와 신흥유신세력(지방 향리 출신)에 의해 조선이 건국되었다. 급진적 개혁은 부담이 커서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 고려 공양왕때 도원결의를 이성계와 맺으려 했으나, 왕과 신하 사이에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거절하였다. 위화도회군후 이성계는 정권을 장악하고, 그를 추종해 온자와 회군 당시에 공로를 세운 자들을 각기 원종?희군공신으로 봉하여 나름대로 포상하였다. 애초부터 친명책을 표방한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자 여 태조에게 자신의 즉위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였다. 그것은 왕조의 교체를 명 황제로부터 인정받음으로써 대외적인 보증을 얻어 대내적으로 왕권의 권위를 확립하려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신왕조는 국호의 개정을 괴하여 명에 사신을 보내어 조선, 화령 중 어느 하나를 택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명 태조는 유서도 깊고 칭호도 아름답다는 이유로 조선을 택정하여 보냈다. 그리하여 신왕조가 고려라는 이름을 버리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게 된 것은 태조 2년 2월부터이다.

그러나, 조선에 대한 명의 무리한 조공과 유민 쇄환의 요구로 말미암아 조선과 명의 관계는 순조롭지 않았다. 명 태조가 조선 국왕의 금인과 고명을 보내 주지 않아, 태조 이성계는 명에 대해서 왕호를 쓰지 못하고 권지고려국사라는 칭호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 당시 요동은 원나라 세력이 떨치고 있었으나, 명이 건국으로 인하여 퇴각하고, 요동을 고려의 땅으로 할 것인지, 명의 땅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다툼이 일어났다. 고려가 쇄약했기에 요동을 차지할 수 없었다. 또한, 요동에 거주하던 유민을 돌려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 드리지 않아 명은 책봉해 주지 않았다. 태종 때 와서야 책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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