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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와의 전쟁 이후 고려 사회의 변화

저작시기 2005.09 |등록일 2007.01.09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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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여 ․ 몽 관계

2. 대몽 전쟁기 민중의 생활과 항쟁

3. 삼별초와 대몽 항쟁

4. 여 ․ 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

5. 고려양과 몽고풍

6. 개혁정치의 시작과 실패

1) 충선왕의 개혁

2) 개혁위원회를 설치한 충목왕

3) 공민왕의 개혁


7. 권문 세족과 친원 귀족 세력

8. 고려 말 사대부와 왕권과의 관계

본문내용

1. 13세기 동아시아의 정세와 여 ․ 몽 관계

몽고 평원에 자리잡은 유목 민족이었던 몽고족은 요․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다 13세기 초 테무친이란 영웅이 등장하면서 주변의 부족을 통일하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였고 테무친은 칭기즈칸 지위에 오른다. 당시 동아시아 정세는 중국 대륙의 남부에는 남송, 북부 및 만주에는 금, 몽고의 서쪽에 서하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칭기즈칸은 이들에 대한 정복 사업에 나서면서 먼저 서하를 정벌하고 금의 공격에 나선다. 한편, 이 무렵 만주에서는 금의 쇠퇴 속에 거란계인 야율유가(耶律留哥)가 봉기하여 요왕을 자처하고 나서고, 몽고의 거란에 대한 공격으로 거란이 몽고군을 피해 고려에 침입하고, 고려군의 반격 속에 거란족은 평양 동쪽의 강동성에 집결하고, 야율유가의 진압에 나섰던 금의 장군 포선만노가 패배한 후 금을 배반하고 자립하여 간도 지방에 동진국을 건설하는 등 어수선한 정세였다.
이에 칭기즈칸은 이 때가 만주 제압의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카진 ․ 쟈라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동진국을 정벌케 하였다. 정벌 후에는 “거란족을 토벌한다.”라는 명분으로 동진국 병사 2만과 연합하여 고려 동북면 지방으로 남하하여 거란의 주력 부대가 집결한 강동성에 다다른다. 이 때가 고종 5년(1218)이었는데, 고려도 강동성 공략을 추진 중이었다. 그리고 대설로 군량 보급이 어려워진 몽고․동진의 연합군은 식량 원조와 공동 작전을 고려에 제의하는데, 고려는 망설임 끝에 원수인 조충의 결단으로 군량미 1천 석을 지원하고 공동 작전으로 강동성을 함락하였다(강동의 역). 이것이 고려와 몽고의 첫 접촉이었다.
강동의 역 이후 고려와 몽고는

참고 자료

한국사 22(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국사편찬위원회, 1995.
이태진, [高麗末․朝鮮初의 社會變化] {震檀學報} 55, 1983.
이동희, [조선초기 官人層 연구-고려와 조선 지배세력간의 관계규명의 일환으로-] {國史館論叢} 72,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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