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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 작가론

저작시기 2005.08 |등록일 2007.01.0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들어가며

박지원 작가론을 하기에 앞서 필자는 연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박지원에 대해 몇 마디 적고자 하니, 그의 작품 수만큼 이나 박지원이란 인물에 대해 헤아리기 어려워졌다. 박지원을 생각하면 그의 실학사상이나 법고창신(法古刱新)의 문체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외에 그 당시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다양한 사상의 배경이 되는 그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왼손잡이’가 된 것일까?

목차

들어가며
본문
마치며
덧붙이는 말
▶ 참고자료
참고문헌

본문내용

들어가며

박지원 작가론을 하기에 앞서 필자는 연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박지원에 대해 몇 마디 적고자 하니, 그의 작품 수만큼 이나 박지원이란 인물에 대해 헤아리기 어려워졌다. 박지원을 생각하면 그의 실학사상이나 법고창신(法古刱新)의 문체가 떠오를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외에 그 당시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다양한 사상의 배경이 되는 그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를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왼손잡이’가 된 것일까?

본문

연암 박지원은 1737년 영조 13년 3월 5일에 서울 안국방에 사는 반남 박씨 사유(師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를 중미(仲美)라 했고, 여러 가지 호를 썼으나 연암으로 많이 알려졌다. 연암의 집안은 세상에서 관면대족(冠冕大族)으로 치는 명문거족에 속했다. 그의 6대조 충익공(忠翼公) 동량(東亮)은 임진왜란 때의 공신이며, 그 후의 선조들도 대대로 정계에서 대사헌, 판서, 참판 등의 요직에 있었다.
실학의 선구자인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이 관계에서 밀려나는 야당파로 남인에 속했던 것과는 달리, 연암의 가문은 당시 집권파였던 서인 노론에 속했다. 그러므로 만약 연암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에게는 광활한 출셋길이 열려 있었다. 그어나 연암은 당시의 양반 출신 청년들이 일반적으로 과거를 보고 벼슬길로 나서는 것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벌써 젊어서 벼슬길을 버리고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으며 일생 동안 한 번도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면 연암 박지원으로 하여금 자기를 낳아 기른 계급과 사상적 관계를 끊고 시대의 선진적 지향을 대변하여 나서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그가 나서 자라고 사상문화 활동을 전개한 당시의 사회 문화적 환경을 들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과 거듭되는 여진족의 침입으로 심중한 상처를 입은 조선 봉건 사회는 발전의 하강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거듭되는 전쟁에서 자기의 무능성, 반인민성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은 양반계급은 전후에 와서 경제의 복구 발전을 위해서도 무위무능한 자기 정체를 감출 수 없었다.

참고 자료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열하일기》, 보리, 2004.
김일렬,《고전소설신론》,새문사, 1991.
김지용, 《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한양대학교 출판원, 1994.
박종채 지음 박희병 옮김,《나의 아버지 박지원》,돌베개, 1998.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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