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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에너지의 순환(The circulation of social energy)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7.01.07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신역사주의 ; 사회적 에너지의 순환를 직역한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그러나 ‘사회적 에너지’는 무엇인가? 이 용어는 측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을 함축한다. 그러나 나는 고찰을 위한 단일하고 안정된 할당량을 고립시키는 편리하고 확실한 공식을 제공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영향들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오직 에네르기아(energia) 확인한다. 즉, 그것은 집합적인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경험들을 조직하고 형태를 취하고 생산하는 확실한 언어적, 청각적, 그리고 시각적 흔적들의 수용능력 속에서 명백해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즐거움과 흥미의 반복되는 형태들과 관련되고, 불안, 고통, 두려움, 패배, 연민, 웃음, 긴장, 안도, 경이를 일깨우는 능력과 연관된다. 미학적인 방식에서 사회적 에너지는 최소한의 예측 가능성-단순히 반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비록 압축되었을지라도, 어떤 공동체에 한 명의 창작자 혹은 소비자를 넘어 도달하기 충분한 최소한의 범위를 가졌음에 틀림없다. 때때로, 우리는 이러한 경우에서 관심을 갖는데, 예측 가능서과 범위는 훨씬 더 방대해질 것이다. 즉, 다른 사회 계층과 신앙들을 가진 수많은 남성과 여성들은 웃음과 눈물을 유발시키기 될 것이며 혹은 걱정과 고양의 복잡한 혼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사회적 에너지의 미학적 형태들은 최소한의 적응성에 의해 보통 특징적으로 묘사된다. 또한 일상 언어를 사라지게 만드는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인 가치 속에서 적어도 일부 지속적인 변화들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데 충분하다. 반면에 본래의 배경에서 새로운 자소 혹은 시대로부터 이동된 대부분의 집합적인 표현들은 도착 시 소멸되고, 특정한 작품 속에서의 암호화 된 사회적 에너지는 수세기 동안 삶의 환상을 유발시킨다. 나는 작품이 그러한 강력한 에너지를 획득하고 확장하는 것을 통해 협상을 이해하기를 원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한 것처럼, 이러한 협상들을 재구성하기를 갈망한다면, 그 사람은 최초의 순간을 발견하는 꿈을 꾸고, 그 순간은 명인이 응집된 사회적 에너지를 장엄한 미학적 대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물음은 성과가 없다. 왜냐면 최초의 순간도 없고, 구속되지 않은 창작에 대한 순전한 행위도 없기 때문이다. 눈부신 발생 대신에, 사람은 처음에 훨씬 덜 화려해 보이는 어떤 것을 감지하기를 시작한다. 즉, 일련의 미묘하고 애매한 교환들, 거래와 교환의 그물망, 재현들을 다루는 경합, 공동 자본 회사 간의 협상이 있다. 점차적으로, 이러한 복잡하고 끊임없는 차용과 빌려주기는 내가 희망했었던 현현보다도 내게는 좀더 중요하고 통쾌한 것처럼 다가왔다.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있어왔고, 셰익스피어 시대에 우리들의 문학적인 관심의 중심에 있었던 텍스트의 흔적들은 확장된 차용의 생산품, 집합적인 교환, 상호적인 황홀의 상태이다. 그것들은 문화적으로 분리된 영역에서 또 다른 영역에 이르기 까지 특정한 것들인 근본적으로 일상 언어 뿐만 아니라 은유, 의식, 춤, 상징, 옷의 품목, 잘 짜여진 이야기, 기타 등등을 이동시키면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이러한 영역의 구조 뿐만 아니라 이것들 사이에서의 변화하는 경계를 가로질러 이동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가 소재들이 이동되어질 수 있고, 한 장소에서 남아있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가? 어떻게 문화적인 소재들이 교환을 위해 준비되는가? 그것들이 이동할 때 그것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우리는 왜 도대체 이동을 말하도록 강요되는가? 옷의 품목, 무대 소도구, 배우들의 체현과 같은 대부분의 물질적인 예들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글자 그대로 무대 위에 이동되지 않는다. 오히려, 극장은 몸짓과 언어에 의해 재현을 성취한다. 즉, 완전하게 만질 수 없는 기의를 두는 것과 같은 기표로서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가들은 거울 이미지 속으로 되풀이하여 되돌아감으로써 이 파악할 수 없는 것을 기입하는 것처럼 보인다. 햄릿의 판에 박힌 말로서 극의 목적은 거울을 인간성에 유지시키는 것이다. 즉, 미덕을 특징으로 보여주고, 자신의 이미지를 모욕하기 위해서 이며, (3.2.21-24)거울은 순간적이고 정확한 재생산의 상징이다. 즉, 그것이 반영하는 것으로부터 아무것도 취하지 않고, 자기 인식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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