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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를 통한 흑인 문학 다시 읽기; 검은 피부 속의 진실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7.01.07 | 최종수정일 2014.12.25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더치맨』(Dutchman)과『슬레이브』(The Slave)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성배는 지금껏 수세기 동안 인간에게 신성하며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신비의 원천으로 작용, 인식되어져 왔다. 그래서 성배와 관련한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전설을 통해 대중에게 종교적 신성함과 동시에 친숙함을 부여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기독교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는 성배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잔이라고 말한다. 이것(성배)으로 아리마데 요셉은 예수가 흘리는 피를 모았고, 영국으로 가서 그의 후손에게 물려주었으나 언젠가부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이 대략적인 내용이다. 성배에 관한 미스터리는 훗날 기사단이 성배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 획득했다는 전설도 있고, 1398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리도 있다. 이렇게 많은 전설과 더불어 수많은 사람들이 성배를 찾아 나섰는데 중세 문학의 주를 이루는 아서왕의 기사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성배의 탐구는 고귀한 기사도 정신을 소유한 중세의 기사들에게 적격이었으며, 따라서 중세 문학의 주를 이루게 된다. 성배에 관한 그것의 위치나 존재를 탐구하는데 있어 어느 누구도 성배를 본 사람은 없다. 더구나 성배의 실재성을 위해 뒷받침할 역사적인 자료 및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성배는 전설, 신화 속에서 남아 있는 것이며 결코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아 있지 않은’ 혹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성배에 관해서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과연 종교적인 믿음으로 성배에 관한 모든 객관적인 부재를 용인할 수 있을까? 신을 믿음으로 섬기는 것이 종교이며, 인간이 극복하기에 불가능한 고통을 위한 정신적인 근원이 되는 것이 또한 종교라면 우리는 실존하고 있지 않은 성배에 관한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오직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만이 사라진 성배를 획득할 자격이 있으며, 수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성배를 손에 넣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허사였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들은 ‘성배의 탐구’ 과정이 사라진 성배의 획득의 과정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데아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과정’으로 재해석 가능하다. 부재 속에 실재하는 성배를 찾아가는 그 과정에서 바로 스스로를 깨닫고, 좀 더 성숙된 자아고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성배 본연의 진리이며, 그것이 부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기존의 종교적 의미에서의 성배 탐구를 다루었던 중세 문학과는 달리 ‘성배 탐구= 깨달음의 과정’이라는 전제하에 성배가 지닌 본연의 참된 의미를 현대 흑인 문학 속에서 재발견하는 작업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합리한 인종적인 차별을 통해서 그 동안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자아의 부재를 지니며 살아온 흑인의 역사를 감안한다면 깨달음의 과정으로서의 성배의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더욱이 그 깨달음은 흑인뿐만 아니라 타자(흑인을 제외한 모든 인종, 특히 백인)들에게도 기회를 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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