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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와 419혁명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0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3.15의거에대해

목차

1. 답사일지
1)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된 곳
2) 3·15 의거 탑
3) 3·15 국립묘지

2. 역사적 배경

3. 발생과정
1) 3월 15일
2) 4월 11일
3) 4월 12일
3) 4월 13일

4. 3.15의거 결과
4- 1) 4.19 혁명의 의의
4- 2) 4.19 혁명 과정

본문내용

1. 3.15의거 유적지를 답사하고 나서

나는 마산에 살고 있다. 사실 이 리포트를 쓰기 전까지 4.19는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3.15는 잘 모르고 있었다. 매일 버스타면서 보았던 3.15탑을 보면서 무심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3.15관련 유적지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마산시 홈페이지에 가서 역사관을 클릭했더니, 3.15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이 싸이트를 클릭하자마자 마치 1960년대 3월 15일로 되돌아 간 것처럼 생생한 그날의 함성이 들려왔다. 정말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그 싸이트의 배경 음악이었다. 많은 사진 자료와 기사들로 나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에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마산 시민들의 정의를 위한 투쟁임을 알게 되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다큐. 에니메이션이다. 현재의 학생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1960년대로 가서 김주열 학생을 만나면서 3.15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김주열 학생에 대한 것도 조사했는데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던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답사를 제일 먼저 갈 곳은 김주열 군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참혹한 모습으로 떠올랐던 곳으로 정했다. 김주열 열사에 대해 조사하다가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김주열군의 눈에서 추출된 포탄은 직경 5㎝, 길이 20㎝에 탄피가 알루미늄으로 된 미제 고성능 최루탄으로, 꼬리 부분에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으며 건물 벽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대무장폭도용 최루탄이었다. 최루탄 겉면에는 "Don`t use on the crowd" - 직접 군중을 향해서 쏘지 말라는 주의 표지까지 적혀 있는 특수 최루탄인데, 경찰은 비무장 군중에게 직접 발사했다. 이 최루탄은 당시 경비주임 박종표가 실탄 사격 틈틈이 발사한 최루탄 10여 발 가운데 하나였다. 박종표는 3·15 데모 진압 후 김주열의 시체를 발견하고 사람들의 눈에 띌 것을 두려워하여 경찰서장 지프차에 시체를 싣고 부두로 나가 돌을 매달아 바다에 집어던져 버렸다. 김주열의 시체는 27일 동안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다가 묶어둔 돌이 미끄러져 떨어져 나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었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가진 곳이었지만 김주열 열사가 떠 오른 곳은 바다 앞에 낡은 팻말이 없었으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때는 어린 학생들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였고, 마산시민은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의거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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