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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등가사의 문학사적 의의

저작시기 2006.07 |등록일 2007.01.04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사회등가사에 대한 발표문입니다.
까다로운 교수님께서도 잘 정리된 발표문이라고 하셨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발표문입니다.
단순한 리포트가 아니었고, 발표를 위한 것이었으므로, 리포트 보다는 내용이 실속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적은 에이플러스 받았던 발표문입니다. 많이 선택 바랍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大韓每日申報》와 〈社會燈歌辭〉
2. 〈社會燈歌辭〉의 내용적 분석
3. 〈社會燈歌辭〉의 형식적 분석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사회등가사는 개화기의 애국 계몽적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시가류 중 하나로 중세 문학의 마감과 근대 문학의 시발이라는 과도기적 환경 속에서도 내용면에 있어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훌륭히 반영하였으며, 형식상으로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통해 문학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한 장르이다. 여기에서는 사회등가사에 나타나 있는 개화기 계몽운동의 문학적 성과와 형식적 특성을 알아보고 사회등가사가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와 그 한계점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大韓每日申報》와 〈社會燈歌辭〉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2월에 일어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영국인 배설(裵說)이 양기탁(梁起鐸)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1904년 6월 29일 《코리아 타임즈》라는 명칭의 견본 신문으로 창간하였고 이후 같은 해 7월 18일에 《대한매일신보》라 개칭하면서 시작되었다.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던 무렵은 일본이 한국 언론에 대해 검열을 실시하고 직접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러나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 때문에 주한 일본 헌병사령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민족진영의 대변자 역할을 다할 수 있었다. 社勢가 확장되고 독자수도 늘어나면서, 통감부가 설치된 이후에는 민족진영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언론기관이 되었다. 이와 같이 큰 영향력을 가진 신문이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서자 일제는 이 신문에 대해 여러 가지 탄압을 가하게 되었다. 일본 측은 외교경로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여 발행인 배설은 1907년과 1908년 2차례에 걸쳐 재판에 회부되었고, 양기탁도 國債報償義捐金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무죄로 석방되었다. 배설은 이러한 탄압과 싸우는 가운데 1908년 5월 27일부터 발행인 명의를 영국인 만함(萬咸:Alfred Marnham)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1909년 5월 1일 배설이 죽고 난 후, 1910년 6월 1일부터는 발행인이 이장훈(李章薰)으로 바뀌었고, 국권피탈이 되면서 조선 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했다.

참고 자료

김윤식∙김우종 외,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 1999.
김영철, 『한국개화기시가의 장르연구』, 학문사, 1987.
박을수, 『한국개화기저항시가론』, 아세아문화사, 2001.
임종찬, 『개화기 시가의 논리』, 예림기획, 1998.
윤명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인하대출판부, 2000.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지식산업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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