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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국학과 독서삼품과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7.01.0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국 교육사 시간에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때의 교육 기관인 국학과 인재 등용 제도인 독서삼품과에 대해
레포트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부제는 `통일신라 시대의 골폼제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입니다.

목차

1. 서론
2. 국학의 설립
3. 국학과 유학
4. 독서 삼품과의 출현
5. 통일신라 시대의 골품제도
6. 결론

본문내용

통일신라 시대 지배층은 불교를 장려함과 동시에 유교 정치 사상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신라의 지배층이 중앙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유교의 정치 이념을 필요로 한데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유교와 불교의 병행적인 발전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말에 이르기까지 큰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Ⅰ. 서론

신문왕 2년(682)에 국가 교육기관으로서 국학이 설립된 것은 국가의 유학진흥책의 한 구체적 표현이었다. 국학은 그후 8세기 중엽인 경덕왕 때 그 기구가 더욱 정비되었다. 교사로서 박사와 조교를 두고 과목으로는 유교의 경전인 논어, 효경을 필수로 하였으며, 그 밖에 예기, 주역, 좌천, 모사, 상서, 문선을 선택과목으로 하였다. 여기에 입학할 수 있는 자는 15세 이상, 30세 이하의 귀족자제들 이었으며 수업연한은 9년이었다.
독서 삼품과는 독서의 성적에 따라 3등급으로 나누어 관리를 채용하는 제도였다. 과거제도의 시원적 형태인 독서 삼품과는 「춘추」,「예기」,「문선」을 기초 과목으로 「논어」,「효경」,「곡례」세 과목을 독서 능력에 따라 상, 중, 하 3품으로 나누되, 만일 5경과 3사(三史:「사기」,「한서」,「후한서」)와 제자 백가를 겸비한 이가 있으면 특품으로 하여 품에 따라 관직을 수여하였다.

Ⅱ. 본론

1. 국학의 설립

신라는 통일 후 신문왕 2년(682)에 비로서 국학을 세웠다. 국학은 당나라 제도의 영향을 받아 설치한 예부(禮部)소속의 구립 교육기관이다. 국학 설치 연원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덕왕 2년(648) 당나라를 방문한 김춘추는 당태종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당나라 국학의 석전(釋奠)의식과 강론을 참관 한 적이 있었다. 『구당서』권 199장, 「열전列傳」149상, 東夷, 新羅
당시 개혁의 주도 세력이었던 김춘추는 이때 국학 설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때부터 국학 설치를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기록상 고구려에 비하여 310년이나 뒤늦은 셈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렇게 국학을 늦게 세운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학을 세운다는 것은 유교가 국가 이념으로 공인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자료

이종욱, 「신라의 역사 2 그들의 왕국: 삼한통합에서 후삼국통일까지」, 서울: 김영사, 2002
박재문, 「한국교육사」, 서울: 학지사, 2001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한국교육사」, 서울: 교육과학사, 1997
강봉룡, 서의식 공저,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1: 고조선, 삼국」, 서울: 솔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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