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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답사 감상문

저작시기 2007.01 |등록일 2007.01.02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서울 답사 레포트 입니다.
남산에서 시작 된 답사였습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답사코스
3. 나오는 말

본문내용

지금의 서울은 그 당시의 서울에 비해 엄청나게 커졌다. 왕을 중심으로 관리들, 백성들이 사는 곳을 빙 둘러싼, 이른바 도성(都城)의 크기는 지금의 서울에 비해 많이 작다. 이 도성이 자리한 곳은 풍수지리상으로 더할 나위 없는 명당으로 `산을 뒤로 하고 물을 (앞에) 임한다`는 뜻의 배산임수라 한다. 마을이 들어설 때 북쪽의 산을 뒤로 하고, 마음의 동쪽, 서쪽, 남쪽에도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남쪽의 산 앞으로 물이 주위를 휘감아 흐른다. 이것이 바로 명당이라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도성을 감싸고 있는 네 산은 다음과 같다. 먼저 주산, 곧 북쪽 산은 북한산(北漢山)이다. 좌청룡, 곧 동쪽 산은 낙산(駱山)으로, 타락산(駝駱山)이라고도 한다. 우백호, 곧 서쪽 산은 인왕산(仁旺山)이다. 안산, 곧 남쪽 산은 목멱산(木覓山)으로 바로 지금의 남산(南山)이다. 그리고 도성 남쪽을 끼고 흐르는 객수가 바로 한강(漢江)이다. 이렇게 서울은 풍수지리상으로 그야말로 명당이다.
그러나 단지 명당이라 한 나라의 수도가 된 것은 아니다. 서울은 한 나라의 중심도시일 뿐만 아니라, 국제도시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와 교역할 경우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다. 따라서 서울은 단지 명당일 뿐만 아니라 교통도 편리해야 하고, 외국 사람들과의 교역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그에 맞는 넓은 평지도 있어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고루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한강은 서해로 흘러나가고, 당시 가장 큰 교역 상대였던 중국과의 교역이 바로 서해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렇게 서울, 당시의 한양은 모든 조건이 수도로서 부족함이 없었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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