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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국제음악제와 윤이상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30 워드파일기타파일 (rtf) | 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통영국제음악제관련 에쎄이
클래식음악계에 통영국제음악제가 미치는 위상

목차

없음

본문내용

산과 바다로 둘러쌓여 있는 조그마한 도시 통영.
이곳은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우는 조그만한 관광도시로
트라이애슬론과 각가지 먹을거리 볼거리로 유명하다.
이 조그만한도시에서 유명한것은 먹거리 볼거리 뿐만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시인, 예술인이 많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

그중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청마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 그리고 지금 이야기 하고자 하는 윤이상이 바로 통영의 자랑거리가 되는 인물들이다. 이렇게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많은 예술인을 배출할 수 있었던것은 통영의 뛰어난 자연경관과
바다향기가 큰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윤이상은 통영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로 음악제의 창설과 더불어
윤이상 기념관’과 ‘윤이상 음악공원’ 설립이 추진되어 2004년까지 조성하기로 하였으며,
2002년에 열리는 제3회부터는 세계적인 연주자와 단체를 초청하고 기간도 16일로 늘리는 등 규모를 확대하여 빠른시간내에 성큼성큼 놀라울만큼 세상에 알려졌다.
모짜르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가 해마다 그의 음악제를 열어 문화도시로 각광받는 것처럼 통영시도 윤이상을 통해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키워나간다는 계획이다.

윤이상은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 거대하게 평가 받고 있지만
그의 최후는 어쩌면 그에게 불행했다.
56년 프랑스로 가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하였고,59년 독일에서 열린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서울로 강제소환, 2년간의 옥고를 치뤄야만 했으나, 세계음악계의 구명운동을 힘입어 풀려났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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