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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대구의 읍성과 도시화(대구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비교)

저작시기 2005.12 |등록일 2006.12.30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대구에 존재했었던 읍성과 그것의 해체에 따른 도시화 과정에 대하여 조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및 소감>

본문내용

<서론>
나의 고향 대구광역시의 중심가는 ‘동성로’라고 일컬어지는 거리이다. 대구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적어도 한번쯤은 가봤을 거라고 생각되는 이 거리에는 늘 젊음의 기운이 넘친다. 백화점, 패션 몰, 영화관 등이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이곳은 학원가가 바로 옆에 있어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락날락하던 거리이다. 그런데 무심코 지나쳤던 이 거리에 이름을 풀이해보면 동녘 동(東), 성 성(城), 길 로(路), 말 그대로 ‘성의 동쪽에 있는 길’이라는 뜻이 된다. 22년 동안을 대구에서 살았던 나는 대구에 성이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성의 동쪽에 있는 길’이 있다면 성이 분명히 있었다는 소리가 된다. 또한 대구에는 동성로 외에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가 있다. 나는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대구에 존재했었던 읍성과 그것의 해체에 따른 도시화 과정에 대하여 조사해보았다.

<본론>
1. 읍성의 흔적
성곽은 크게 산성, 행성, 읍성으로 나눌 있다. 산성은 방어를 목적으로 하여 산 정상부의 고위 평탄면 같은 평탄한 면에 쌓은 성을 말하고, 행성이란 일정한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여러 개의 성을 연달아 쌓고 성과 성 사이는 지형에 따라 토성, 목책, 해자 등으로 연결한 성을 말한다.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등장했던 성곽 유형이 바로 읍성인데,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는 산성과 행성과 달리 방어와 통치를 같이 했던 성곽 취락(castle town)이다. 우리나라의 읍성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택하여 그 안에 들어서거나 큰 산을 북쪽에 두고 그 남쪽에 입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지형을 고려하면서 방어와 행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림1] 대구광역시 중구 지도
대구는 읍성의 입지 요건으로 최적인 곳이었다. 그것은 대구의 옛 이름에서부터 알 수가 있다.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를 해석해보면, ‘달구’는 우리말의 고어 산에 해당되는 ‘닥’ 또는 ‘닭’이 ‘달구’로 연음되어 나타난 표기법이고, ‘벌’은 순수 우리말로 평아, 들판의 뜻을 가진다. 결국 ‘달구벌’은 산으로 둘러싸인 들판 또는 평야로 지리학에서 말하는 분지의 특성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대구의 옛 이름의 뜻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대구의 남쪽 비슬산괴의 대덕산-앞산-산성산-법이산-용지봉과 동쪽 구릉지의 지산-두리봉-모봉-형제봉 그리고 북쪽으로 팔공산지, 서쪽의 와룡산으로 둘러싸여 대구 분지를 이루고 있다.

참고 자료

- 전종한 외, 2005, 인문지리학의 시선, 논형
- 향토지리연구회, 2002, 지리로 읽는 대구이야기, 영한
- 전영권, 2003, 이야기와 함께 하는 전영권의 대구지리, 신일
- 구글 어스(Googl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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