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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9 한글파일한글 (hwp) | 2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사까이 나오끼의 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의 문선 부문의 요약과 비평

목차

누가 아시아인인가
일본사와 국민적 책임
공감의 공동체와 공상의 실천계
제국주의적 국민주의와 파시즘
민족성과 종
`국제성`을 통해 무엇을 문제삼을 것인가

본문내용

누가 아시아인인가
요약
지구화에 가속도가 붙고 최근 10, 20년간 탈근대적 조건이 전지구적 규모로 출현한 탓인지, 우리는 현대세계를 고찰할 때 우선 서양이라는 통일체를 하나로 변별하기가 점차 어려워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사회, 문화구성의 토착적 ,국지적 특질은 어떤 일반화 되고 완곡하게 표현된 ‘서양적’이라는 대비해서 표시되기 일쑤였다. 이 인지에서는 두 가지 계기를 발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인지되는 대상이 일상적으로 친근하지 않고 색다르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인지하는 자의 위치를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 제도화된 제스처에 의해서 스스로를 서양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질적이고 기묘하게 느껴지는 것을 서양/비서양이라는 이항대립을 이용해서 구분하고 ‘비서양’과 동일시한다.

서양이라는 가상적 동일성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와 다르다는 말과 아시아적이다라는 말은 인간학적, 인류학적 실천의 제스처 속에서 암암리에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조작이 이루어진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질적이고 기묘하다는 인지는 종종 야만성의 인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작을 통해서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세계의 나머지 곧 세계에서 서양을 빼냈을 때 남은 찌꺼기에 귀속되는 존재가 된다.

외부의 관찰자에 의해서 아시아인이라고 묘사되는 상태에서 우리 아시아인이라는 말로 자기를 주체로서 구축하는 상태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비약이 필요하다. 이 비약이 20세기가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잇었다고 하는 역사적인 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때까지는 아시아인이라고 불리는 객체는 존재했지만 스스로를 아시아인이라고 불러 자기를 표상하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소수의 지식인들이 나라를 초월한 아시아의 주체성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아시아의 계보학이 지닌 독자성을 간과할 수 없다.

아시아는 유럽이 지기를 표상하고 유럽을 다른 지역과 구별하기 위해 만든 용어였다. 19세기부터 서양이 유럽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기회가 늘어났다. 아시아는 유럽에 대해서와 비슷하게 서양에 대한 이항대립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오늘날 아시아가 서양의 지배아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아시아의 나라들은 대부분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에서 독립한 상태이다. 그렇지만 아시아가 서양의 식민지화 덕택에 아시아라는 자기의식에 도달했다고 하는 지금까지도 영속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진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참고 자료

국민주의의 포이에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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