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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기행문

저작시기 2006.05 |등록일 2006.12.28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수원화성을 답사한 후 작성한 기행문입니다.

본문내용

화성의 축성 계획은 조선후기에 대두된 성곽의 방어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실학파 학자들의 실용성을 추구한 학문적 관심 그리고 이 모든 생각들을 집대성할 수 있었던 조선후기의 대학자 정약용이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겪고 난 조선은 왜적의 침입에 무력하게 무너진 조선의 방어체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성곽의 방어능력을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재상을 맡아 백성들의 처절한 고통을 체험한 유성룡(1542 ~ 1607)은 난이 끝난 후 [징비록]이란 책을 서술하여 전란 중에 느꼈던 개선점을 적었는데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성곽에 관한 것이었다. 즉 성곽에서 중요한 것은 치성과 옹성인데 당시 조선의 성들은 거의 이런 기능을 제대로 갖춘 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치성과 옹성을 반드시 갖출 것을 역설하였다. 치성이란 성벽의 일부를 돌출 시켜서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격퇴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며, 옹성은 성문 앞에 둥글게 또는 네모지게 한 겹 더 성벽을 쌓아서 성문을 이중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한 시설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고대 중국에서부터 고안되어 활용되어 온 것이었으나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곳 외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밖에 몸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성가퀴도 충분한 크기로 만들고 포루를 설치할 것도 제안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성제의 장점을 연구하여 조선의 성을 보다 견고히 할 것을 제안한 사람으로 조중봉, 강항, 유형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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