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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 비판

저작시기 2006.11 |등록일 2006.12.28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임나일본부설의 비판과 가야에 관한 글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세기 후반 메이지 천황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임나 일본부설은 1949년 스에마쓰(末松保和)가 쓴 `임나흥망사`에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었다. 이것은 김석형의 분국설이 나오기전인 약20여년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스에마쓰가 주장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삼국지` 위서 왜인전을 보면 3세기 중반 무렵 왜는 벌써 임나 가야를 차지하고 삼한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4세기 중엽에는 `일본서기`와 광개토왕비에서 알 수 있듯이 경남, 경북 대부분과 전남, 전북, 충청 일부를 정복하고 백제를 복속시켰다. 5세기 송서 왜국전에 나오는 왜 5왕의 작호로 보아 중국 남조로부터 신라, 임나, 가라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임나 일본부는 5세기 후반부터 백제와 신라에게 공격을 받아 점점 쇠퇴해지다가 562년 마침내 신라에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646년까지는 신라에게 임나지배권을 넘겨 준 대가를 받아내었다.


현재는 일본의 학자들도 임나 일본부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한반도 남부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주장은 하지 않고 있다.

1963년 북한 학자 김석형은 임나 일본부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거꾸고 삼한 및 삼국 시대에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가 분국을 세웠다는 주장을 하였다. 분국설의 내용은 이렇다.


3세기 무렵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곳곳에 나라를 세웠다. 이들은 마한, 진한, 가야, 백제, 신라 등 자기들이 살았던 나라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새로 세운 나라의 이름으로 삼았다. 이 분국들은 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려 왜족이 세운 수많은 나라들과 함께 서로 세력을 키우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4세기 무렵 야마토 정권은 주변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여 나가다가 마침내 7세기에 이르러 통일 정권을 수립하였다. 그 과정에서 야마토 정권은 복속한 나라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고 직할지같이 지배를 하였다. 따라서 임나 일본부는 그 가운데 가야 사람들이 세운 분국 임나에 둔 것이다. 또, `송서`에 나오는 왜왕의 관작은 왜왕이 진한분국, 마한 분국 등을 차지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고 칠지도는 본국 백제왕이 분국 백제왕에게 보낸 것이다


한국의 김철준 교수는 `한국 고대 문화 연구의 몇가지 문제(1973년)`라는 글에서 위의 두입자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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