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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마틴헹엘의 신구약중간사 독후감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8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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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 1장 알렉산더의 원정과 팔레스타인 (B.C. 333/331)

알렉산더의 원정이 있기 전부터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은 주변국의 불안한 정세로 인하여 전쟁의 불안을 느끼고 있다. 알렌산더의 원정이 있기 전부터 팔레스타인 해안펴지의 일부는 시돈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가 동방원정을 시작하자, 마케도니아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전에 그리스인들과 맺었던 관계를 버리고 마케도니아인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한편 알렉산더는 23세의 나이로 주전 333년 11월 이소스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 인해 그의 군은 작지만 위력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동시에 다민족 국가의 군을 능가하과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알렉산더의 지칠줄 모르는 공격의 천연의 요새였던 두로마저 7개월간의 공략 끝에 점령하였다. 이 후 알렉산더는 별다른 저항 없이 페니키아와 팔레스타인의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페니키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던 가자까지 점령하였다. 북쪽에서 내려온 알렉산더가 두로와 다른 도시들을 정복하는 것에 대한 기록은 “이사야” 외에도 “스가랴”1-9장 1-8절의 위협의 시에서도 나타난다. 주전 332년경 화폐보관소나 팔레스타인의 해안지역의 파괴를 보면 두로와 시돈 뿐만이 아니라 작은 지역들도 마케도니아의 침공으로 정복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알렉산더는 파괴된 두로와 가자의 도시들의 재이주 이외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떠한 도시들의 건립에 대한 계획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는 같은 해 5월 두로에서 화려한 운동경기를 거행한 이후 두 개의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로 진격하였으며, 그 곳 기우게멜라에서 주전 331년 10월 1일 다리우스 3세와의 결전에서 승리하여 명실상부하게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열어놓았다. 이러한 알렉산더는 화폐와 재정을 제외하고는 정복한 국가들의 내정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정복한 제국은 너무나 광활하여 그 나라를 하나하나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전 332년 알렉산더는 인도에서 회군하던 중에 바빌론에서 33세의 나이로 뜻밖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알렉산더가 끼친 영향은 어느 것이나 간과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적인 판단은 유대인들의 전승에 잘 나타난다. 다니엘과 같은 묵시문학과 이디오피아 에녹서와 같은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상징의 묵시록들은 알렉산더의 원정에서 세계사의 종말론적인 대변혁을 보았다. 마카비1서도 세계의 정복자였던 알렉산더를 부정적인 성격으로 규정한다. 유대인들은 알렉산더와 그의 후계자들에 대해서도 비판하는데, 그 배경에는 특히 그들이 요구한 신적인 숭배에 대한 비난이 들어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요구에 한번도 스스로 굴복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이러한 요구가 유대인들에게 헬레니즘과 로마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각인시켰다. 그와 반대로 유대인들은 과거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헬레니즘의 지배를 비난하면 할수록, 알렉산더에의해 파괴되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모습은 점점 더 미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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