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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실학사상의 정책반영과 개화사상과의 연관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7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1.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분야별로 나누어 각각 정책에 어느정도 어떻게 반영되었는지와,
2.이러한 실학사상이 훗날 개화사상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에 대한레포트입니다.
조선시대사 관련 레포트인 만큼 거의 모든 단어에 한글과 함께 한자 표기를 덧붙였습니다.

목차

Ⅰ. 실학사상의 정책반영
1. 머리말
2. 토지제도개혁론
3. 군역개혁론
4. 노비제도 개혁론
5. 맺음말
Ⅱ. 실학사상의 근대적 전회(轉回)
1. 전회의 인적 계보
2. 전회의 논리적 연관
3. 전회의 계기
4.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후기 실학자들의 제자들 내지 후계자들을 추적해보면 대체로 초기 개화사상가들과 연결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박규수(朴珪壽)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친손자요, 또 그 사상은 계승 발전시켰다. 박규수는 조부(祖父)의 실학사상을 계승하면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등의 선배 실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말기 실학자 내지 초기 개화파들과 친밀한 문우(文友)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역관(譯官)으로 당시의 국제사정에 밝았던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과 깊은 관련을 가졌다. 박규수는 늘 학문은 반드시 실(實)에다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옥균, 박영호, 홍영직, 유길준 등의 개화파 청년들과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을 읽으며 평등사상과 이용후생(利用厚生) 사상을 연구하고 「해국도지(海國圖誌)」를 읽으며 부국강병의 길을 도모하고 지구의(地球儀)를 돌리며 시무(時務)를 토론하였다.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역시 연암(燕巖)의 영향을 많이 받아 「연암집(燕巖集)」을 발간하여 연암(燕巖)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는 19세기의 탁월한 실학자로서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誌)」를 읽고 이 책의 주장한 바를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의 문하(門下)에 있던 대원군(大院君)은 집권하여 박규수(朴珪壽), 신관호(申觀浩) 같은 실학자를 중용(重用)하였다.
고관당(古觀堂) 강위(姜瑋)는 병인양요(丙寅洋擾)를 크게 우려하고 당시에 이미 쇄국정책을 반대했었다고 하며, 시무(時務)에 밝은 선비로 지목되어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때에 필담(筆談) 책임자로 참석하였다.

참고 자료

1. 이을호박사 정년기념 실학논총 간행위원회,『실학논총』, 전남대학교, 1975.
2. 신한국사연구회,『알기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신한국사』, 태을출판사, 1994.
3. 강상택,『새로운 한국사의 이해』, 형설출판사, 1997.
4. 『한국사』 37, 국사편찬위원회, 1998.
5. 서의식,『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솔,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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