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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의 사회변동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6.12.27 한글파일한글 (hwp) | 20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임진왜란 이후 일어난 사회변동에 관한 레포트

목차

Ⅰ. 머리말

Ⅱ. 壬辰倭亂 당시의 사회동태
1. 壬辰倭亂의 전개과정
2. 壬辰倭亂 중의 사회상

Ⅲ. 壬辰倭亂의 영향과 社會變化
1. 壬辰倭亂의 영향
(1) 明에 끼친 영향
(2) 日本에 끼친 영향
2. 壬辰倭亂 이후의 朝鮮의 社會變化
(1) 정치․군사제도의 개편
(2) 중앙정계의 변화
(3) 부세정책의 변화
(4) 농업생산력과 농촌사회의 변화
(5) 상품화폐경제의 발전
(6) 신분제의 변동

Ⅳ.맺음말
《參考文獻》

본문내용

壬辰倭亂은 1592년(宣祖25)부터 1598년(宣祖31)까지 2차에 걸친 倭軍의 침략으로 일어난 戰爭으로 올해로 壬辰倭亂이 발발한지 4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壬辰倭亂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은 정유년에 일어나 丁酉再亂이라 일컫는데 일반적으로 壬辰倭亂이라면 丁酉再亂까지 포함해서 말한다.1壬辰倭亂은 7년만에 일본을 물리쳤으며 노량대첩을 끝으로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또한 7년여라는 장기간에 걸쳐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에서 전개된 전쟁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도 개입하게 됨으로써 國制戰으로 비화된 전쟁이었다. 그 결과 壬辰倭亂은 조선왕조가 맞이한 국난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壬辰倭亂으로 중세사회의 종말을 고하게 되고 새로운 사회로의 서막을 열게 해주어 새로운 자각이 일게 되었다. 그리하여 壬辰倭亂 이후 朝鮮․日本․明에 다같이 政治․經濟․社會․文化的으로 큰 영향을 주었으며 싸움터였던 조선이 전쟁으로 입은 타격은 매우 심각하여 오랫동안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러한 壬辰倭亂에 대해서는, 朝鮮社會가 壬辰倭亂을 겪으면서 사회체제가 급격하게 붕괴, 해체되었다는 견해가 가장 오래된 해석이었다. 일제시대 일본시대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역사 인식이 대체로 이러했다. 그들은 조선왕조 쇠망의 첫 단추를 壬辰倭亂으로 끼었던 것이다. 壬辰倭亂 이후시기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인 시각은 1960년대 이후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불식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현상, 곧 전환기의 제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壬辰倭亂 이후의 사회상이 재조명되기에 이르렀다. 자맹론 혹은 내발론2이 조선후기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면서 壬辰倭亂 이전의 사회에까지도 이러한 시각이 소급 적용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15세기의 조선사회를 중세사회의 재편기적 특성을 가진 시기라고 규정할 경우, 16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을 예감하는 다양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壬辰倭亂은 16세기 이래의 해체적 양상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는 일대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농업 생산력과 농업 경영의 변화, 상업과 수공업의 발전, 그리고 부세제도이 변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들에 의해서 보강되면서, 16세기의 사회상과 壬辰倭亂의 특성이 한층 뚜렷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

참고 자료

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29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탐구당, 1995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1997
이기훈, 『戰爭으로 보는 韓國歷史』, 지성사, 1997
한명기, 『壬辰倭亂과 韓中關係』, 역사비평사, 1999
이지영, 「壬辰倭亂과 對外關係」, 동국대학교碩士學位論文, 1999
崔正鎬, 「壬辰倭亂 이후 身分變動에 관한 硏究」, 仁川大學校敎育大學院 碩士學位論文,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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