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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녀 시조, 황진이 등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6 | 최종수정일 2017.02.1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고전 시가 과목
기녀 시조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A받았던 과목입니다.

목차

Ⅰ. 기녀시조의 특징
1.1 기녀란?
1.2 작가층
1.3 기녀시조의 특징

Ⅱ. 작품
2.1 황진이
2.2 황진이 작품 소개
2.3 그 외의 기녀 시조

Ⅲ. 마치면서
3.1 기녀시조가 갖는 의미와 결론

본문내용

1.1 기녀란?
기녀시조에 관하여 살피기에 앞서 이를 쓴 기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기녀는 언제 생겨난 것일까? 기녀의 유래에 관하여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진다. 그 설 중 하나는 신라시대 화랑제도 이전에 있었던 원화(源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보면 진흥왕(眞興王) 37년(576)에 왕과 신하들이 인재를 찾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사람들을 모아 무리지어 놀게 하고 그들의 행실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서 훌륭한 사람을 뽑아 쓸 계획이었다. 원화(源花)라 하여 여자들 가운데 미모나 덕성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 뽑아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가 있었다. 여기에서 원화가 기생과 같은 것으로 보고 이를 기생의 기원으로 보는 견해이다. 또한 이인로(李仁老)의 『破閒集』(파한집)에 실린 김유신의 일화를 보면 최소한 신라 때부터 기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이나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雅言覺非)의 주장을 들어 우리나라의 기생은 양수척(揚水尺)에서 나온 것이니 양수척이란 유기장(鍮器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공격할 때 견제하기 어려운 부류로 이들에게는 관적(貫籍)과 부역(賦役)이 없고, 수초(水草)를 따라 다니기 때문에 아무 때나 이사를 자주하고 사냥과 유기(柳器)를 만들어 이를 생계의 수단으로 삼았다. 나중에 이들을 읍적(邑籍)에 예속시켜 남자는 노(奴)로, 여자는 비(碑)로 만들어 여자들을 예쁘게 꾸며 화장을 시키고 노래와 춤을 가르쳐 기생으로 만든 것이 기생의 시초라는 주장이다.

1.2 작가층
시조가 풍류 형장에서 가창된 노래였다는 점은 사대부 남성의 주도로 전개된 시조사에서 기녀들이 작가층으로 등장한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악(女樂), 외국 사신 접대 등에 동원된 기녀들은 국가나 지방관청에 소속된 천민이었지만 국가에서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았기 때문에, 양반들의 연희를 혹은 기부(妓夫)를 얻어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 양반의 풍류 생활이 기녀제도, 기녀풍속의 뒷받침 속에서 향유되는 가운데 기녀라는 신분상의 특수성은 기녀들에게 시조 창작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신분상의 의무 때문에라도 기녀들은 사대부 풍류에 동석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남성들의 장르인 시조에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빈번히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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