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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문헌사료적 고찰

저작시기 2006.10 |등록일 2006.12.2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삼국유사가 문헌사료로써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쓴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三國遺事』의 편찬배경
Ⅲ. 史書로서의 『三國遺事』
Ⅳ.『三國遺事』의 현대적 의의
Ⅴ. 나오는 말

본문내용

Ⅰ. 들어가는 말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한국의 고대를 알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물론 『사기(史記)』의 조선열전과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에서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처럼 한국의 고대를 다룬 중국의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찍이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쓰며 한탄했듯이 중국의 사료는 어디까지나 중국이 중심이며, 우리는 이민족 중 하나인 동이의 역사였을 뿐으로 자세하지도 상세하지도 않았다. 중국의 자료 외에 당시 사람들이 직접 쓴 글인 금석문과 고고학적 성과물인 유물과 유적이 남아있다. 이들은 1차 사료라는 점에서는 매우 귀중한 사료임에 틀림없으나, 고대사 전체를 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렇게 볼 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사를 구성하고 정리함에 있어 절대적인 자료들이다.
특별히 본고에서 다룰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다른 점이 있다. 삼국사기는 관찬사서이며 기전체(紀傳體)를 그 체제로 택하고 있다. 또한 삼국의 왕(王)을 시간 순으로 배열함으로서, 삼국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을 한층 수월하게 해 주었다. 또한 집필한 이들이 김부식(金富軾)을 비롯한 유학자들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유교사관에 입각하여 쓰여 졌다.
이에 비해 『삼국유사』는 사찬서(私撰書)이며, 구성체제도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 때문에 관찬사서의 딱딱함을 피할 수 있었다. 또 집필자인 일연(一然)은 스님이었기 때문에 유교적 합리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삼국사기』에서 비합리적이란 이유로 빠진 많은 신화, 향가, 설화 등이 『삼국유사』에 실리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전제로 『삼국유사』가 가지는 사료적 성격과 가치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한다.
Ⅱ.『三國遺事』의 편찬배경

1. 일연(一然)의 생애
일연은 경주 장산군(현재 경산군)에서 고려 희종 2년(1206)에 태어났다. 이름은 견명(見明)이었는데, 뒤에 일연으로 바꾸었다. 자는 회연(晦然), 호는 목암(睦庵)이었다.

참고 자료

박진태 외, 『삼국유사의 종합적 연구』, 박이정, 2002.
이범교, 『삼국유사의 종합적 해석(上)』, 민족사, 2005.
리상호, 「신편삼국유사」, 신서원, 1960.
이범직, 「한국인의 역사의식」, 청년사, 1999.
조동걸,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上)」, 창작과 비평사, 1994.
신형식, 「韓國史學史」, 삼영사, 1999.
이기백, 「三國遺事의 史學史的 意義」, 「眞檀學報」36, 창작과 비평, 1976.
정구복, 「三國遺事의 史學史的 考察」, 「三國遺事의 綜合的 檢討」,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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