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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산수화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조선말기 산수화에 대한 글입니다. 사진자료도 충분하고요. 대표적인 화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목차

권동인
<세한도>
조희룡

본문내용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남종화풍이 말기(末期)에는 화단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남종화의 기법을 단순히 본받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림의 형상보다 내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사의성(寫意性)에 커다란 의미를 두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의 대표적인 서화가이자 평론가였던 추사 김정희와 깊은 관계가 있다. 김정희는 중국의 문물과 서화(書畵)를 직접 접하면서 감식안(鑑識眼)을 키웠고, 옹방강(翁方綱) · 주학년(朱鶴年) 등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들과 교유하면서 이론적 기틀을 확립하였다. 이를 토대로 당시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들에게 화평(畵評)과 화론(畵論)을 통하여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김정희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은 화원과 문인화가를 비롯하여 중인 · 평민 출신의 화가들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는 조희룡 · 전기 · 김수철 등 말기의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의 기록이 적혀 있는 <8인수묵산수도>이다. 이 작품들은 당시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8명이 김정희에게 그들의 그림을 보여 평(評)을 받기 위해 그렸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통해 보더라도 당시 화단에 김정희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며 그림의 사의성보다는 형사(形似)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사군자의 경우 문인들의 이상을 상징하는 원래의 의미보다는 소재의 길상성(吉祥性)을 강조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권동인
: 본관 안동. 자 경희(景羲). 호 과지초당노인(瓜地草堂老人) ·이재(彛齋). 시호 문헌(文獻). 1812년(순조 1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자(正字) ·헌납을 지내고, 1819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36년(헌종 2) 병조판서로서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경상도관찰사에 이어 이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1842년(헌종 8)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임용되었으며, 1845년 영의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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