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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앙군 2군6위 성격에 관한 논의(부병제와 군반제)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5 한글파일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고려시대 중앙군의 성격 논쟁에 관한 글입니다
부병제와 군반제 그리고 혼합설에 대해 실어 두었습니다
정리하기 좋으실거에요

목차

1. 들어가는 말
2. 부병제(府兵制)설
3. 군반제(軍班制)설
4. 절충설(경외군 혼성제설)
5. 맺음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는 말
고려시대 군사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중앙군의 성격을 두고 부병제와 군반제로 논쟁을 해왔다.
고려 중앙군은 응양군, 용호군의 2군과 좌우위, 신호위, 흥위위, 금오위, 천우위, 감문위의 6위로 무반 장교와 일반 군인들로 편성되었다. 이 중 군인은, 45000명 정도로 추정되며 군반씨족이라고 불리는 출신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이 군반씨족의 성격을 두고 일반농민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느냐와 나라로부터 녹읍을 받으며 복무한 직업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느냐에 따라 부병제설과 군반제설로 나눠진다.

2. 부병제설
《고려사》를 비롯한 당대 대부분의 사서에는 고려의 병제가 부병제 인 것 처럼 설명을 한다. 《고려사》병지 서문에 고려의 병제가 당의 부위제와 유사하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고려의 병제가 부병제로 운영되던 당의 부위제를 모방했거나, 그와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의 부위제란, 균전제에 입각해서 농민에게 땅을 골고루 분급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농민에게 조․용․조의 부담을 지우거나, 또는 대신에 군역을 부과하여 군인을 확보하는 제도이다.
물론 고려에서는, 모든 농민에게 땅을 분급하는 균전제가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과는 달리 특수계층인 군반씨족만이 군역이라는 직역을 담당했고, 그 대가로 군인전을 지급받은 것이다. 하지만, 군반씨족 역시 농민계층이었고, 병농일치, 군민일치의 제도가 확립된 상태이므로, 부병제와 성격이 비슷한 것이다.
즉, 농민은 16세 이상이 되면 군역을 충당하도록 되어있었는데, 관부에 상주하는 군인과 경작을 하다가 경고가 있으면 즉시 무기를 들고 적진에 투입되는 상비군으로 나눠 이 두 군대가 번갈아 가면서 성을 지키고 남는 노동력은 공사에 이용되었다가 다시 농사일에 복귀하는 형세였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고려시대사 上》, 박용운, 일지사, 2004
《한국사 통론》, 변태섭, 삼영사, 2006
《뿌리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3 고려》, 이병희, 솔,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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