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아나키스트 이회영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4 한글파일한글 (hwp) | 22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한국인 최초의 아니키스트 이회영에 관한 내용입니다.
많은 활용 바랍니다.

본문내용

우당 이회영(李會榮ㆍ1867~1932) 선생

이회영이 유독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는 이 시대의 탓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가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즉 지배층의 엄격한 의무는 간 곳 없고 특혜만이 횡행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이회영이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부족에 있다. 영국의 명문 이튼스쿨 출신 지배층은 역시 이튼스쿨 출신 아들을 남보다 먼저 전쟁에 내보낸다. 그러나 한국의 지배층은 전시에는 물론 평화시에도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는다. 6ㆍ25때 전선에서 총에 맞으면 빽이 없어 죽는다 하여 `빽`이라는 비명을 지르며 죽었다는 농담이 단순한 우스갯 소리가 아닌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지금도 장ㆍ차관이나 국회의원, 각 정당의 지도자들이나 심지어 군 장성의 자식들은 일반 국민의 아들들보다 훨씬 적은 비율로 군대에 간다는 것은 추측을 넘어 통계자료가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조선이 망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부족이었다. 물론 시종무관 민영환과 의정대신 조병세, 전 참판 홍만식, 학부주사 이상철, 시위대 대장 박승환 등 나라가 망하자 목숨을 던진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500년 장구한 사직의 지배층치고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이들이 너무 적었다. 평양대에 소속된 군졸 김봉학과 시골의 유생이었던 매천 황현 등의 순절이 더욱 빛나는 이유도 이들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해야 할 의무가 있는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