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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와 하이데거

저작시기 2006.01 |등록일 2006.12.22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고나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으면서 하이데거의 사상적 기반을
통하여 피아니스트를 감상하였다.

목차

1. ‘피아니스트’로 출발
2.전쟁에 대한 이분법적 접근
3. 하이데게의 ‘존재와 시간’
4. 결론

본문내용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민 11:20)이 구절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원하는 것인가? 그에 대해 무엇이 진정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를 따라 사는 삶이 있고, 원함을 따라 사는 삶이 있다. 세상은 원함으로 살지만, 인간은 필요에 의해 살아가야 한다. 원함은 많은 것을 요구하나, 필요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종이에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펜은 1개이다. 그러나 자기가 갖고 싶은 펜은 여러개 일 수 있다. 미혼의 청년이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면 여러 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필요로 바라본다면, 남편이나 아내 1명이면 된다. 이성을 원함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바람둥이, 카사노바, 꽃뱀이라고 부른다. 반면에 이성을 필요로 바라보는 사람을 성실한 남편과 아내라고 부른다. 필요에 집중하면 생명이 충만해지고, 원함에 집중하면 죽음을 맛보게 된다.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원함은 탈출이었다. 탈출이후 마실 물이 없자 원망한다. 마실 물이 주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한다. 먹을 것이 생기자 같은 것을 먹기 지겹다고 고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설득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계속 원함만을 추구한다. 계속 원하면 계속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이 심판이었다. 고기를 원하니 고기를 얻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1개월을 고기만 먹었다. 1달 전에 이스라엘의 원함은 고기였다. 그러나 1달이 지난 후 이스라엘의 경멸의 대상도 역시 고기였다. 원함이 경멸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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