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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제주도와 제주말의 역사

저작시기 2006.12 |등록일 2006.12.22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200원

소개글

`제주말과 제주말`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내용, 형식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구요.
역사학 공부하시는 분들 도움되시겠네요.

목차

<目 次>

Ⅰ. 머리말


Ⅱ. 본론


1. 제주도의 환경


2. 제주도 초원의 형성


3. 제주마 유래설


4. 제주마의 기원


5. 제주마의 특성


6. 마을공동 목장운영


7. 제주마의 가치




Ⅲ. 맺음말

본문내용

7. 제주마의 기원
기록에 근거한 제주의 축마 기원을 흔히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원이 제주에 목장을 설치하면서부터라고 말하여지고 있지만, 그러나 몽고가 들어오기 훨씬 전인 고종45년(1258)에 탐라에서 말을 바친 기록이 있고 <당서>권200에는 백제 무왕22년(621)에는 백제왕이 당 고조에게 과하마를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과하마가 탐라에서 백제에 바친 준마라고 하였다. 이런 기록 말고도 곽지패총에서 수습된 말의 이빨과 뼈, 그리고 <당회요> 탐라국조에 기록되어 있는 당시 탐라국의 무기중 기마전용 삭(길이 1장6척)이 있는 점들로 미루어 볼 때, 조랑말이 선사시대부터 길러져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도에 본격적인 목축이 시작된 것은 고려 시대에 삼별초군이 패망하고 제주도가 몽고의 목마장이 된 13세기 후반부터의 일이다.
몽고는 제주도가 기후가 따뜻하고 풀밭이 넓어 말을 키우기에 알맞은 곳이고, 더구나 일본 정벌의 중간 발판으로 아주 알맞은 곳이었으므로 이곳을 고려로부터 빼앗았다. 그래서 제주도는 백년쯤 몽고 땅이 되는 수난을 겪게 되었다. 1276년에 몽고에서 몽고 말 160 마리를 가져와 지금의 남제주군 성산읍 수산리 일대인 수산평에다 방목하였고, 이어서 소와 양과 낙타도 실어왔으며 몽고의 목호들도 데려와 목장 체제를 갖추었다. 몽고의 지배가 끝난 뒤에 조선 왕조에 들어서서 세종 때의 열 군데였던 목장이 열세 군데로 확장되고 관리 조직도 체계화되었다.
그런데, 고려 때부터 그러하였지만, 이 목마에 따른 관의 작폐가 심했다. 이를테면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말을 여러 곳에 나누어 기르는 둔전 제도를 썼는데 둔전마다 백 마리가 넘는 말을 배당하고 이 말을 치는 목자를 두었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괜찮았으나 풀이 없는 초봄이나 겨울이 되면 굶주려 죽는 말이 많았다. 그러면 목자는 그 가죽을 벗겨 관가에 바치는데, 관가에서 장부의 기록과 견주어 보고 가죽에 흠집이 없이 말이 저절로 죽은 것이 증명되면 가죽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으나 관리들은 막무가내로 그것을 목자의 책임으로 돌려 말 값을 물어내게 했다. 그래서 목자는 말 값을 물려고 재산을 팔아야 했고 심지어 친척들까지 배상 책임을 져야 했으므로 모두 목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 책임을 맡고 나서 집안이 망해 자살하는 목자도 있었다. 또 읍의 수령들이 백성이 좋은 말을 가지고 있으면 주인을 잡아다 곤장을 치거나 임금의 명령이라고 둘러대고 빼앗는 일이 잦았으므로 백성의 고통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이처럼 제주도 목축의 역사에는 진한 비극이 깔려있다. 그런 판에서도 목축은 식민지 시대를 지나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 와 오늘에 이르렀다.


참고 자료

·헤르만 라우텐자흐, 1998, 코레아 Ⅰ , 민음사

·한창기, 1987, 제주도, 뿌리 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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